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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33] 불온한 인문학: 원래 인문학은 불온하다구
    행간의 접속/인문 2012. 8. 30. 22:30

     


    불온한 인문학

    저자
    최진석 지음
    출판사
    휴머니스트 | 2011-06-27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자본과 국가, 권력에 의해 길들여진 인문학과 싸워라!인문학과 싸...
    가격비교

    수유너머 N의 연구원들이 모여서 인문학에 대한 다른 생각을 담은 책이다. 6명의 연구원들이 한 꼭지를 맡아서 논문처럼 썼다. 처음에는 약간 가벼운 논평 정도의 책인 줄 알았는데, 꽤 어려운 내용들을 담은 논문에 가까웠다. 그 내용은 제목처럼 인문학의 정신은 불온한 것이라고 얘기하고, 그리고 그 결과는 인문학의 틀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현재 유행하고 있는 인문학의 열풍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자본과 국가의 이해에 편승한 덕분에 호의호식하는 순응주의자의 인문학. 대중적 삶의 지평에서 유리되어 고전에만 칩거하는 나르시시스트의 인문학. 양자는 하나같이 현실 직시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환상에 몰두한 채 세상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불모의 인문학에 다름 아니다. 인간과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바꾼다는 미명 뒤로 펼쳐진 삶의 적나라한 모순과 질곡을 질타할 줄 모르는 인문학은 인간을 위한 것도 아니고, 삶을 위한 것도 아니다.

     

    결국 삶과 유리된 인문학은 인문학이라고 할 수 없고,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제1장 우리 시대 인문학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에서는 인문학이 소비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인문학이 다시 부활한다고 하는데, 대중 강좌 좀 열리고, 인문학 책이 조금 팔리고 있다고 해서 부활이라고 하는데, 실상 대학의 인문학을 들여다 보았을 때 여전히 대학의 인문학과들은 통폐합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CEO들이 인문학 책을 많이 읽는 경향이 있는데, 그들은 창의 경영을 위해서 읽는다고 하지만 그 창의 경영의 궁극적인 목적인 생산성 향상이지 인간적인 삶의 보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2장 인문학에 저항하는 불온한 사유를 시작하다에서는 불온한 인문학의 개념에 대해서 얘기한다.

     

    불온한 인문학학이란 지금까지 인문학에 부여되었던 동일성의 서사, 그 통념의 의무를 거부하고 내던질 때 시작된다. 국가와 너는 같지 않다고 신랄하게 지적하는 것, 민족의 영광과 네 개인의 행복은 별개의 문제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것, 휴머니즘을 떠벌리며 자행한 학살의 현장을 상기시키거나 삶의 주체로 우뚝 서서 만족해하는 자신에게 꼭두각시 인형이 비친 거울을 보여주는 것, 안온하고 평화로운 일상의 배면에 '우리'로부터 배제된 이웃이 있음을 폭로하는 것, 인문학은 한 번도 순수하게 존재한 적이 없음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것...

     

    사실은 불온한 인문학이 아니라 진정한 인문학은 불온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제3장 불온한 인문학은 사유의 정치다에서는 불온한 인문학을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사유를 들고 있다.

     

    현재 인문학-장치에 대항하는 불온한 인문학이란 들뢰즈와 가타리 식으로 말하면 대항 사유를 벼려내기 위한 시도이며, 사유의 전쟁기계를 가동시키기 위한 기획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오늘날 유행하는 인문학이 당연한 것으로 저제하는 공리들과 그것에 의해 구축된 내적 완결성, 내부성의 형식을 파괴하는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 사유다. 불온한 인문학은 CEO인문학, 치유의 인문학, 교양 인문학, 창의력 인문학 등이 형성하고자 하는 자본의 이해와 국가 질서에 순응적인 삶의 방식을 파괴하고 그것과 절연하려는 사유의 힘을 인문학이 가동시킬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유를 하는 이들을 사유의 야만인들이라고 지칭한다. 규범에 순응하지 않고 불순한 존재로서의 야만인들이다.

     

    제4장 횡단의 정치, 혹은 불온한 정치학에서는 횡단의 개념과 그것을 이용한 정치에 대해서 얘기한다.

     

    볼수 있는 것/없는 것, 말할 수 있는 것/없는 것의 경계에서 작동하는 권력은 말할 수 있는 '자격', 혹은 말할 대상이 될 '자격'과 관련되어 있다. 원래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주체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어디서나 말할 수 있는 주체는 매우 희소하다. 즉, 아무나 말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없으며,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한 자격을 갖춘 자만이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예로 병원에서의 의사와 간호사를 들고 있다. 환자에 대해서 내가 아무리 잘 알고 있어도 병원에서 환자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의사와 간호사 뿐이다. 이러한 관계들이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도 이런 생각은 해 본적 없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어쩔 것인가? 그 대답으로 횡단을 얘기하고 있다.

     

    횡단은 분할의 경계를 횡단하며 그것을 부수고 전복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고 말할 수 없던 것을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그러한 경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권력에 대한 저항이고, 그것을 통해 그 분할의 선을 침범하고 변환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가리개로 가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연속적인 양적 분할과 다른 차원에서 가리개 없이도 보이지 않는 이러한 가시성의 체제야말로 횡단의 정치가 정의되어야 할 지점이라고 믿는다.

     

    결국 횡단이란 체제를 가로질러 전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횡단을 얘기하면서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말은 김연수의 책 『여행의 권리』에서 문학의 역할에 대해 얘기한 것과 뜻이 통하는 것 같다. 그런 가운데에서 정치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한다.

     

    분할의 체제 안에서 분배된 구획선들을 유지하고 할당된 자리에서 몫의 분배를 다루는 것은 '치안'이지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이처럼 권리의 유무를 가르는 분할선을 침범하면서 주어지지 않은 권리를 주장하고, 주어지지 않은 몫을 주장하는 것이며, 말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 말할 자격을 주장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중략>

    여기서 치안이나 통치가 분할의 선을 지키고 그 선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라면, 정치는 그 선을 넘는 것이란 점에서 정확하게 '횡단'을 뜻한다.

     

    내가 알고 있는 정치는 서로 다른 주장을 잘 얘기해서 잘 해결하는 것 정도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미 정해진 것 안에서 조정하는 것은 치안 혹은 통치이고, 정치는 정해진 것을 흔들어 새롭게 바꾸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횡단'이나 '정치'라는 용어의 개념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용법으로 사용되지 않으니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얘기가 반복되니까 어느 정도 감이 왔다. 그 의미대로라면 인문학은 정말 불온하다.

     

    제5장 인문학의 현장은 어디인가에서는 G20 정상회의 때 쥐 그래피티를 그려 징역 10월의 징역형을 구형 받은 박정수가 쓴 글인데, 인문학의 현장에 대해서 얘기한다.

     

    인문학의 현장은 근대적 '인간'의 영토에서 추방되어 사람대접 못 받으면서도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삶, 그래서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급진적으로 제기되는 시간과 장소다. 인문학자는 그 질문을 '진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전'시키기 위해, 즉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미시 권력으로, 경험과학의 틀로 정의된 '인간'의 경계를 비판하고, '인간' 개념을 넓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제6장 인문학은 위험한 존재를 만들 수 있는가에서는 클레멘트 코스로 대표되는 대중 인문학 강좌의 한계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불온성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각기 다른 사람이 나눠서 책을 썼지만 일관된 논리로 자신의 생각을 얘기한 것으로 봐서 책을 쓰기 전에 함께 얘기한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오랜만에 어려운 책 읽어서 머리가 약간 아팠지만 그래도 나름 성취하는 바가 있어서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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