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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2] 계몽의 시대: 당연한 것들의 뿌리행간의 접속/역사 2015. 11. 16. 22:54
서명: 계몽의 시대
저자: 고미숙
출판사: 북드라망
발행일: 2014.04
근대에 대한 책을 또 읽었다. 봉건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현재의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어떻게 그런 것들이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그 근원이 알고 싶었고, 다른 책에서도 많이 언급했었지만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이 분야의 책의 자꾸 읽게 된다. 읽게 되면서 조금씩 감을 잡고 있는데, 여전히 모르는 것은 모르겠다.
이 책은 근대 3부작 중 제1권인데, 시공간, 인간중심주의, 민족, 지식을 얘기하고 있다.
1. 시공간에 대해서
기차로 상징되는 근대 문명은 사이성을 소멸시킨다. 즉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 출발지와 목적지만을 접할 수 있을 뿐이고, 그 사이에 있는 공간은 생략되어 존재하지만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공간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더 이상 우주와 공명하지 못한다. 별의 운동과 위치를 정확히 꿰뚫고, 심지어 그것을 정복할 수는 있을지언정 우주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은 모조리 차단되었다. 이젠 어떤 학자도, 심지어 천체 물리학자라 해도 우주와 공명하는 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우주는 우주고, 나는 나일 뿐이다. 시간 표상 또한 지극히 협소해졌다. 천년은 고사하고, 백년의 시간조차 한 번에 조망하지 못한다.
'사이성'이 사라진다는 건 이것과 저것 사이에 확연한 위계가 설정됨과 동시에 주인과 노예의 권력관계가 구성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관계 안에선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노예는 물론 주인조차도. 인간과 우주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 소유할 수는 있되, 결코 그것과 공감할 수는 없는 것, 그것이 바로 근대인의 우주다.
근대 이전의 시공간성, 우주는 경계지워지지 않았고, 인간은 그 안에서 수 천년의 역사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사유했으며, 그야말로 우주적 합일을 이룰 수 있었지만, 근대에 와서 인간은 우주를 객관적으로 보면서 측정하여 정확하게 볼 수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은 잃은 것에 비해서 미미하다.
그리고 자연의 시간과는 달라진 인간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일년의 명절을 기념일로 삼는 것이 구체적인 예이다. 예전에는 자연의 시간을 따르는 세시풍속에 따라 명절을 지냈는데, 근대에 와서는 인위적인 기념일을 따르는 것이다. 생활과 아무 관련이 없는....
시간이 단수화되면서 역사는 인과론적인 전망 위에서 다시 구성된다. 그리고 그 중심은 민족이라는 단위가 되고, 민족정신을 고양하는 방향으로 사건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근대 이후의 역사서들은 구체적인 궤적에서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민족의 기원과 유래를 설정하고 그 웅대한 자취를 기술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역사가 이런 식으로 설정되자 역사 서술에서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는 '서사적 통일성'이 요구되었다. 연대기적으로 듬성듬성 나열되기보다 사건들 사이에 촘촘하게 이어지면서 주체와 동기들이 명료하게 부여되었다. 말하자면, 하나의 완결되고 잘 짜여진 이야기로서의 역사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곧 민족의 대서사로서의 역사. 이 대서사야말로 근대 민족담론에 피와 살을 입힌 장본인이다.
근대의 역사를 배워온 우리에게 위의 인용문은 너무 당연하다. 역사는 원래 나름의 인과관계에 따라 사건들이 벌어지고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역사가 그렇지 않고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들의 단편적인 나열이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또 한편으로는 근대 이전에는 역사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했다.
중세의 역사인식에는 국경과 혈통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 은, 주, 삼대가 이룩한 문명은 어떤 왕조라도 다 본받아야 할 '범례'에 해당한다. 이것을 그저 복고적 퇴행으로 치부하는 것만큼 순진한 일도 없다. 그들에게 있어 역사란 일직선으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순환 속에서 무수한 차이들이 변주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문명은 과거이면서 현재이고, 동시에 미래이기도 하다. 비유하자면, 시간의 지층들이 마치 시루떡처럼 켜를 이루고 공존하고 있는 격이라고나 할까.
내가 위의 인용문과 같은 사유를 해본 적이 없어서 정확하게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역사는 일직선이 아니고, 과거, 현재, 미래가 구분되지 않으면서 공존하는 순환적인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근대적인 틀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구체적으로 감이 오지 않는다. 아무튼 근대의 역사는 시간을 일직선으로 놓고, 과거, 현재, 미래를 나누고 앞으로 나아가는, 즉 진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앞의 시기가 뒤의 시기보다 열등하고, 뒤로 갈수록 성숙한다는 수직적 위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근대 이전은 그렇지 않고 잠재적 반복 가능성이 있는 순환이라고 보는 것이고....
2. 인간 중심주의에 대해서
인간 중심주의는 오직 인간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새만금 개펄을 막는 간척사업을 반대하는 삼보일배를 종교인들이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저 환경운동의 하나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글쓴이는 근대문명의 인식론적 기저를 뒤흔드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개펄이란 무엇인가? 육지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육지이면서 바다인 '사이의 공간'이다. 기차와 진화론의 세계는 이 '사이성'을 납득하지 못한다. 이질적이고 다양한 흐름이 뒤섞이면 무조건 황무지라고 간주해 버린다. 그리고는 거기에 뭔가 뚜렷한 경계를 부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삼보일배 순례는 바로 그러한 관성적 사유에 대한 전면적 문제제기였던 셈이다.
사이성을 인정하는 집단과 사이성을 용납하지 못하는 집단의 대립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가져야 할 가치는 그런 곳에 있었다.
그럼 사이성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을 위해서 자연을 이용할 수 있도록 생각하게 만든 것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가? 글쓴이는 기독교를 애기한다.
계몽담론은 창조론을 신분적 해방과 국가적 자유, 국민의 권리, 의무, 정부개혁 등 온갖 정치적 가치들을 도출하는 원천으로 적극 활용하였다. 예컨대, '하느님이 인간을 만들면서 그런 가치들을 내장해 두었기 때문에 계몽주의적 프로그램은 곧 하느님의 명령이다. 또 하느님이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창조주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만물 중에 가장 존귀하고 따라서 태생적으로 부여받은 권리와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만 한다'는 식으로. 그렇다면, 그런 권리와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성에서 나온다. 이성이야말로 창조주가 인간에게만 부여한, 그래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지극히 고유한 '역능'이다.
한마디로 하느님이 인간에게 이성을 주셨기 때문에 자연을 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3. 민족에 대해서
사실 민족 대신에 국가를 사용해도 되겠지만, 근대문명이 들어오는 시기에 우리는 국가를 세워보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을 민족이 했다고 볼 수 있다.
500여 년간 한 왕조가 통치했음에도 그토록 흡인력이 미미할 수 있는지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달리 보면, 이는 그것을 대체할 다른 이름을 찾았기 대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민족'이라는 기호를, 그리고 이제 민족이라는 표상이 그 이전에 이런저런 기호 속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마치 블랙홀처럼 흡인하게 되었다. 민족은 어떤 개념보다도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게 되었고, 그것은 시대의 절대적 명제로, 지고지순한 가치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민족에 대한 담론을 일으킨 분야는 역사이고, 특히 신채호가 그러한 역할을 담당했다.
민족이 하나의 실체적 단위로 설정되는 순간, 민족의 내부/외부가 명확해지고, 이 사이의 대결 투쟁이 역사의 중심 줄거리가 된다. 즉, "부여족이 발달한 실제 자취로서 우리나라 역사의 주요골자로 삼고 기타 각 민족은 우리나라 땅을 차지하고 주권을 다툰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 적국의 외침의 한 예로서" 볼 따름인 것이다. 그리하여 겨사는 주로 한반도와 만주 일대의 패권을 둘러싼 대결관계가 주요 내용을 이룬다. 이것은 '현재화된 과거'에 다름 아니다. 고대사를 말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현재적 욕구, 아니 미래적 기획을 과거에 투사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위와 같은 관점(한반도와 만주 일대의 패권 다툼)으로밖에 역사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이 관점 이외의 관점에 대해서 상상이 되지 않는다. 현재화된 과거가 아닌 역사는 어떤 방식일까? 아까 얘기했던 잠재적 반복 가능성의 순환적 역사? 그럼 그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미를 따지는 것은 근대적인 사유인가? 좀더 자유로워져야 하나? 민족과 역사 부분은 잘 모르겠다.
그 다음 '한'의 정서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정서, 우리 국문학의 정서를 얘기할 때 '한'을 얘기하는데,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란다. 근대에 와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가 되었단다. 그럼 그 전에는 아니었다는 말인가? 근대에 와서 자리 잡은 정서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라는 게 말이 되나?
김소월, 한용운, 서경별곡, 가시리 등을 보면 이 얘기가 맞는데, 그 이외 다른 것들(고려속요, 판소리, 박지원의 한문소설 등)을 봐서는 해학과 풍자가 우리의 정서에 더 맞다라는 얘기를 글쓴이가 한다.
'한'의 뿌리는 민족 담론이었다. 상처 입은 민족, 방황하는 민족 정신의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피, 눈물, 죽음' 등의 수사가 등장하고, 이런 격정을 인격적으로 표상한 '영웅'이 이어받은 후, 1910년 대에는 '조선혼, 너, 내 사랑'이라는 메타포로 전이된다. 그러면서 민족은 우러름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이 되고, 정서는 깊은 비애의 늪에 빠진다. 이 부분에서 '한'이 민족 고유의 정서라는 착시가 일어난다.
이 얘기를 들으니 문학사 시간에 한국문학의 특질에서 '한'을 우리 민족의 정서라고 배운 것에 대해서 배신감이 들었고, 내가 배운 것을 그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4. 지식, 배움, 공부, 앎에 대해서
현대의 학문, 지식 체계는 나뉘어지고, 나뉘어지고, 또 나뉘어져 있다. 문이과 구분, 어문과 인문의 구분, 공학과 이학의 구분 등이 존재하는데, 현실은, 삶은, 대상은 나뉘어져 있지 않은데, 그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나뉘어져 있으니, 제대로 된 지식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런데다가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지식에 대한 표상에 있다. 대학의 커리큘럼에는 '앎이란 무엇인가', '앎과 삶', '앎과 행복', '앎과 사회' 등에 대한 질문들이 송두리째 빠져 있다. 심지어 철학과조차도 그렇다. 단지 철학사를 분석, 정리할 뿐 사유는 절대 하지 않는다. 그것이 현대철학의 현주소다. 다른 과목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한마디로 종합하면, 많은 이들이 '열나게' 공부를 하는데, 공부를 왜 하는지는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공부가 고역일 수밖에.
그럼 현재의 이런 지식의 체계는 어디에서 왔나? 근대 이전에 앎에는 국경이란 없었다. 앎은 언제나 우주와 맞닿아 있었고, 문명을 전제로 이루어진 것이다. 거기에 국경은 없었다. 세상의 이치를 알고자 하는데, 국적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한문은 동아시아 문명의 기반으로서 중국의 글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분히 근대적인, 민족주의적인 생각이다. 근대 이전에는 한문은 다 같이 쓰는 것이었다. 국경이 없었고, 국적이 없었다.
중세의 학문은 천리, 즉 우주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 이면에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사유하는, 혹은 인간과 자연을 연속적 흐름 속에서 파악하는 인식론이 자리잡고 있다. 자연은 끝없는 탐구의 대상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성론으로 전화되어야 한다. 주자의 자연학이 그 탁월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인성론의 지반을 벗어나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그에 반해, 근대적 앎은 무엇보다 '인간과 자연의 연속성'이라는 이 고리를 해체해 버렸다. 자연은 그것을 세계라 부르건 우주라 부르건 오직 분석하고 측량하고, 그 다음엔 지배하고 착취해야 할 대상으로 전이되었다. 그러므로 자연의 이치를 파악한다는 것은 천리를 터득하여 윤리적으로 내면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이용가능한 자원으로 전환하기 위함이다. 계산가능성의 영역으로서의 자연, 이제 자연은 우주적 지평을 벗어나 단지 '격치학'이라는 분과학의 영역이 되었다.
이용가능한 자연을 연구하면서 철학이나 인성을 앞에 나설 수 없게 되었고, 물리학이 축소되면서 철학은 인간이라는 좁은 영역으로 한정되었다. 물리학자는 더이상 철학을 하지 않고, 철학자는 더 이상 천지자연의 이치를 탐구하지 않았다. 다른 분과학들도 철학이나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지 않았고, 자기만의 방에 틀어박혀서 좁은 울타리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면서 학문의 깊이를 얘기할 수도 있겠으나 그 때의 깊이는 '도구적' 지식의 측면에서일 뿐이고, 진정한 깊이는 넓이를 수반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 자연을 계량화하기 위해 수학이 특권적 지위에 오르게 된다. 모든 질적 차이를 정리해 줄 수 있는 도구가 바로 '수'이기 때문에 수학은 근대과학의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수를 이용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근대적 지식은 비판과 분석을 주요 방법으로 삼는다. 이 방식으로 사유하고, 배워온 우리에게 이러한 방법은 매우 당연하다. 문제는 비판과 분석은 언어를 사용하여 이루어지는데, 언어가 우리의 사유를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 간의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대 이전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근대 이전에는 어떤 담론도 언어와 그 외부, 혹은 주체와 대상 사이의 간극을 설정하지 않았다. 언어 혹은 논리는 앎을 표현하는 여러 방편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신체를 통해 터득되는 직관, 우주적 합일에의 충동, 물아일체 등이 앎의 근본전제이자 목표였기 때문에 앎이란 언어를 통해 표현되긴 했찌만, 늘 언어의 외부를 사유하고자 하였다.
결국 지식과 몸이 따로 놀고, 근대의 지식인들은 앎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된다.
5. 떠오르는 생각
다 읽고난 지금도 솔직히 정리는 되지 않지만 현재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의 근원을 살짝이나마 맛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글을 읽으면서 언제나 드는 생각....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답을 또 어떻게 찾아야 할지도 함께 든다. 글쓴이는 삶에 균열을 내고, 고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데, 구체적인 삶 속에서 그 방법을 내 스스로 검증할 수 없으니 답답한 면도 있다.
아무튼 그 다음 시리즈가 또 있으니 계속 읽어 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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