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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0] 로마인 이야기 11, 종말의 시작: 하강 곡선의 시작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행간의 접속/역사 2014. 5. 23. 08:30
11권은 로마가 서서히 하강곡선을 그리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다. 관련되는 황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도스, 내란과 이를 평정한 세베루스 시기이다.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철인황제라고도 불린다. 자신의 철학적인 사고의 깊이를 보여주는 '명상록'이라는 저작을 남겼고, 이 저작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릴 수 있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플라톤의 철인정치론을 현실에서 완벽하게 실현한 시기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통치하던 로마 시대라고 말한다.
하드리아누스는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후계자로 지명할 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동생 루키우스를 양자로 삼을 것을 요구했고, 안톤니누스는 이를 받아들이고 후계자가 되었다. 결국 하드리아누스는 차기와 차차기, 그리고 차차차기까지 염두에 둔 것 같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행정장관, 집정관을 거쳐 안토니누스가 죽자 황제가 되었다. 황제가 되자마자 자신의 동생인 루키우스 베루스를 공동황제에 즉위시켜서 2인의 황제가 통치하는 시대를 열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2인이 통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루키우스가 죽기 전까지 둘은 정말 사이좋게 통치를 해나갔다.
마르쿠스나 루키우스나 모두 군단에서 근무한 경력이 없어서 군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파르티아가 아르메니아를 침공하는 일이 벌어졌고, 루키우스가 원정을 갔다. 황제는 군대 경험이 없었지만 휘하에 훌륭한 장군들이 있어서 전쟁은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전쟁 후 얼마 후 루키우스가 사망하자 다시 홀로 통치를 한다.
게르만 족의 침입으로 인한 제1차 게르마니아 전쟁이 시작되었고, 로마군은 이를 무찌른다. 이 시기에 게르만 족뿐만 아니라 북아프리카, 시리아, 도나우 전선, 심지어 에스파냐 쪽에서 야만족의 침략이 이어져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렇지만 로마군은 평소의 방위 원칙대로 이 위기들을 물리치고 넘긴다. 동시에 마르쿠스는 자신의 아들인 콤모두스를 공동황제로 즉위시키고 다시 2인 통치 시대를 만든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과 어울리지 않는 통치자였는데, 상황이, 시대가 그를 전쟁터로 이끌었고, 여러 훌륭한 장군들과 함께 힘겹게 힘겹게 로마를 지켜나갔다. 전쟁의 시대가 아니었으면 훨씬 더 훌륭하게 로마를 이끌었을텐데 아쉬움이 있다.
2. 콤모두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인 콤모두스는 아버지가 황제일 때 태어났고, 후계자 수업을 받았으며, 게르마니아 전쟁에도 함께 참전하였다. 아버지와 달리 외향적이라서 직접 검투 경기에 나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치는 별 관심이 없어서 해방노예인 측근을 통해서 통치가 이루어졌고, 결국 암살당하고 만다.
3. 내란기의 황제들
페르티낙스 황제는 로마 행정장관이었는데, 콤모두스를 암살한 근위대장 레토가 설득하여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런 레토가 이집트 장관 자리를 원하는 것을 알면서도 주지 않자 레토에 의해 암살당한다. 즉위한 지 두 달만이다.
레토는 다시 북아프리카 속주 총독 출신의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를 제위에 올리려고 했지만, 원로원 의원인 플라비우스 술피키아가 황제로 나서자 근위병들이 이 둘을 놓고 황제 제위를 경매에 붙인다. 더 많은 돈을 주는 사람을 황제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지만 당시 로마는 그정도였다. 결국 디디우스 율리우스가 황제에 올랐고, 원로원의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가까운 판노니아 속주 총독인 세베루스가 군단병들의 추대로 황제를 자칭했고, 시리아 총독 페스켄니우스 니게르와 브리타니아 속주 총독 클로디우스 알비누스가 각각 휘하 군단병들의 추대를 받아 황제를 자칭했다. 모두 4명의 황제가 생긴 것이고, 내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행동을 개시한 것은 세베루스이다. 그는 로마로 진군했고, 근위병들 외에는 휘하 장병이 없는 율리우스는 원로원 의원들에 의해 살해되어 목이 바쳐졌다. 무사히 로마에 들어간 세베루스는 다시 브리타니아의 알비누스와 공동황제로 즉위하자는 조건으로 동맹을 맺고 배후를 안정시킨다. 그리고 시리아의 니게르와 맞서기 위해 동방으로 간다.
동방의 니게르는 많은 군대를 이끌고 있었지만 황제를 능동적으로 원했다기보다는 군단병들의 지지로 나선 것이기 때문에 세베루스와의 전쟁에서 선도적이지 못했고, 결국 패하고 만다. 결국 세베루스와 알비누스가 남게 되었는데, 세베루스의 세력이 커진 것을 본 알비누스의 지지세력이 이탈하여 결국 알비누스도 세베루스의 경쟁에서 밀려나 세베루스가 황제가 된다.
4.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로마의 황제는 실력으로 뽑는다. 그런데 그 실력이라는 것이 대부분 무력인 경우가 많다. 결국 황제가 되기 위해 내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서로 실력이 얼마나 있는지는 겨루어봐야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황제들은 제위를 세습하려고 하였다. 아들이 없으면 실력있는 자를 양자로 삼아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하였다.
세베루스한테는 두 아들 카라칼라와 게타가 있었고, 이 둘을 모두 집정관에 앉히고 후계자 수업을 시켰고, 결국 브리타니아 원정 중에 사망한 세베루스의 뒤를 이어 두 아들이 공동으로 황제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것이 세베루스 가문의 비극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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