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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83] 근대의 책읽기: 근대적 독자의 탄생
    행간의 접속/역사 2012. 12. 12. 09:46

     


    근대의 책 읽기

    저자
    천정환 지음
    출판사
    푸른역사 | 2003-11-07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문화변동과 사회적 소통 양식 전반의 변화를 이끈 원인인 동시에 ...
    가격비교

     

    봉건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책읽기, 특히 소설 읽기에 있어서의 변화를 중심으로 근대의 모습을 재구성하고 있다. 나 자신도 문학사를 이해할 때 10년 단위로 대표작과 작품 경향만을 단순 암기하는 방식으로 생각했었지, 독자들은 주로 어떤 독자였고, 출판과 유통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단지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그 시기에 그런 것들을 하다니 대단하다는 정도의 생각만 했을 뿐이다. 이 책은 실증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이런 추상적인 생각을 구체적인 실물로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먼저 독자층에 대한 구분이 있다. 도식적으로 구분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대체적인 흐름이라고 보면 되겠다.

     

    1) 전통적 독자층: 구활자본 고전소설(딱지본) 및 일부 신소설의 독자, 구연된 고전소설과 일부 신소설 등의 향유자

    2) 근대적 대중 독자: 대중소설, 번안소설, 신문 연재 통속소설,1930년대 야담, 일부 역사솔 등의 향유자

    3) 엘리트적 독자층: 신문예의 순문예작품, 외국 순수문학 소설, 일본 순문예작품 등의 향유자

     

    독자라고 해서 다같은 독자가 아니라 향유하는 장르가 달랐다는 것이다. 전통적 독자층이 존재한다는 것은 여전히 봉건적인 독서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책에 의하면 1930년대까지도 큰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고 나와있다. 우리가 배운 문학사에 의하면 전통적 독자층은 1910년대까지만 있고, 그 후에는 없어졌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이와 관련해서 춘향전이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시기는 조선 후기보다는 오히려 일제시대였다고 한다. 교육과 인쇄기술의 발달로 더 많은 대중들에게 퍼질 수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책읽기 방식의 모습도 있다.

     

    근대 초기 높은 문맹률과 공존한 것은 구술문화와 공동체적 독서였다. 즉 공동체적 독서와 음독으로 표현되는 전근대적 문화로서의 구술문화는 1900~10년대뿐 아니라 1920~30년대에도 광범하게 잔존했다. '공동체적 독서'는 하나의 읽을거리를 가족이나 지역, 직업공동체가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같은 책을 여러 사람이 돌려 읽는 윤독뿐만 아니라, 구술(구연)을 통하여 특정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 책의 내용을 공유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도시와 농촌의 여염집 사랑방이나 안방에서 소규모로 이루어진 가족구성원들의 독서, 도시와 촌락의 장시에서 이루어진 구연을 통한 '독서'가 포함된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묵독을 하지만 근대 이전에는 음독을 했다. 그 모습이 공동체적 독서와도 관련이 있다. 독서 행위는 개인적, 사적인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행위였던 것이다. 혼자서 생각하는 것, 그런 것보다는 같이 생각하고, 같이 느끼는 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교육과 문화의 변화 흐름은 묵독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음독에서 묵독으로의 변화는 소설의 소술구조를 바꾸는 힘이 되었다.

     

    인쇄된 텍스트가 출현함으로써 작가는 고정된 시점과 톤으로 서술하게 되었고, 이로써 작가와 독자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즉 구술문화의 작가나 구연자는 가지각색의 감성을 가진 실제적인 독자(청중)을 대면하여 경우에 따라 서사를 바꾸거나 유동적인 서술시점을 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쇄된 텍스트의 저자는 그럴 수 없다. 독자와 작가의 거리가 무한대로 커진 대신, 작가는 서술에 대한 자신의 시점과 톤을 지킬 수 있었다. 그로써 '서술자narrator'라는 문학적 장치가 소설의 미적 자질이 되었다. 서술은 온전히 작가 개인의 것이 되고, 작가는 스스로 '내면성'을 가진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독자는 작가에게 직접적인 소통을 시도하지 않는 한, 실제적이지 않은 추상적인 상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설의 서술 속에 상정되는 독자가 바로 '모델독자model reader'나 '내포독자implied reader'이다.

     

    작가와 독자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서술자가 탄생하고 내포독자가 생기게 된 과정이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도 변화가 생기는데 다같이 듣고 생각을 공유하는 대신, 혼자서 작가와 마주하여 생각하면서 개인적인 내면의식을 갖게 된다. 근대소설 독자의 탄생인 것이다. 근대소설의 독자는 텍스트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변용하면서 의미를 스스로 구성하는 역할까지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근대 독자가 개인적인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한데 개인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없을 경우에는 스스로 주변과 단절시키는 내면의식과 행동양식을 몸으로 익히면서 책읽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지하철이나 교실, 도서관 같은 곳에서 책읽기는 이런 방식의 예이다. 그러면서 이를 제도적 장치로 도입한 것이 도서관에서 '잡담금지'와 더불어 '음독금지' 규정을 둔 것이고, 학교에서는 '묵독시간'을 두어 훈련을 했다.

     

    묵독하는 정독을 위해서는 조용한 개인적 공간이 필요하며, 홀로 그 공간에서 부동자세를 취해야 한다. 인류가 처음부터 책을 읽을 만한 집중력과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있을 수 있는 인내력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 터이다. 그래서 높은 집중력과 훈련을 요하는 이런 자세는 역사적으로 발전해온 것이 틀림없다. 또한 근대인들은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 도서관 같은 '근대적' 공간에서 책 읽는 자세를 집단적으로 훈련한다. 부모와 선생이 행하는 이 훈련에 적응하지 못하면, '주의산만한' '열등생'이나 '지진아'가 된다.

     

    결국 문화와 제도는 근대화되어가고 있지만 몸은 아직 근대화되지 않아서 이를 위한 훈련이 필요하고 그 훈련을 학교에서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뭐라고 하는 것은 다분히 근대적인 생각일 뿐이고, 인간은 원래부터 그렇게 만들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그 다음에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정전을 구성하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문학사적 정전을 구성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1930년대 초반부터 문단의 과거를 회고하는 작업이 시작되고 당대의 작가와 작품들 중 '명작'의 반열에 오를 만한 작품을 선별하는 작업이 본격화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1930년대 후반 각종 문고본과 선집, 전집이 활발하게 발간된다. 이 시기에 형성된 준별읨 감각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교육되고 권장되는 작품 읽기의 감각과 기준은 1930년대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책을 보면 정전 구성 작업을 더 자세히 보면 설문과 비평 등을 통해 작품을 선별하고, 이를 대내외에 천명하영 정당성을 확보하고 이를 전통화하고 역사화한다. 이 과정에서 문학 권력을 잡은 집단이 전통적 독자층과 근대적 대중 독자층이 주로 읽던 신소설, 고전소설, 신문 연재소설, 통속소설 등을 배제함으로써 문학사에서 이들의 존재는 미미하게 되었다. 실제 이 책들이 많은 독자를 끌어안고 인기를 끌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정해진 작품들이 오늘날 문학사에 남아 있는 작품이 된 것이다. 이 책에는 없지만 이런 작업을 해방 이후에도 문단에서 꾸준히 해서 역사화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요새는 그런 작업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밖에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연애편지 쓰기가 대유행이었고, 기능적인 근대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실용서와 교재, 수험서 등도 많이 읽었고, 노동과 휴식이 분리되면서 취미로서의 책읽기가 나타났다는 것, 어린이라는 존재를 발견하면서 어른의 준비가 아닌 어린이 자체를 보는 눈이 생겼고, 조선어를 탄압하고 일본어를 쓰게 함에 따라 이중언어의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것 등이다.

     

    책이 두꺼워서 읽는 데 시가닝 좀 걸렸지만 근대의 책읽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문학사의 시야를 작품 생산의 측면에서 수용과 유통의 측면으로 넓혀 보는 일이 토론거리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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