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의 접속/문학
[책 45~47] 태백산맥 4부 (8권~10권) 전쟁과 분단: 혁명의 위대함
뚝샘
2011. 12. 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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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전쟁과 분단은 8권~10권, 3권으로 되어 있고, 1950년 10월 중공군 참전 이후부터 1953년 휴전회담 후 9월까지를 배경으로 담고 있다. 전쟁의 시기에 후방을 교란하기 위한 빨치산들의 투쟁을 그 중심내용으로 삼으면서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을 위한 삶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살아간, 혹은 죽어간 인물들을 깊이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끊긴 전남북도당은 입산하여 빨친산 투쟁을 전개하는데, 전남도당은 백운산지구, 불갑지구, 유치지구, 노령지구, 조계산지구, 백아산지구 등 총 6개 유격투쟁지구를 조직하고 해방구를 확보하여 투쟁한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선은 다시 내려오고 1·4 후퇴로 서울은 다시 인민군이 점령하지만 연합군의 공격으로 후퇴하고, 전선은 중부지방에 지리하게 유지된다.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휴전회담은 시작되었고 빨치산에 대한 토벌 작전이 강화되어 각 지구마다 해방구를 잃게 되고, 산악이동투쟁으로 전환되어 각 도당은 모두 지리산으로 이동하게 된다. 1951년 동계 대토벌 작전으로 빨치산들은 큰 피해를 입고, 1952년 동계 토벌에서도 큰 피해를 입는다. 결국 1953년 7월 휴전이 이루어진다.
인상적인 부분들을 정리해본다.
먼저 미군 정보부에서 중공군 포로를 심문하는 장면인데, 중공군 포로는 당과 인민에 대한 무한 충성을 얘기하고, 미군은 개인으로서의 삶을 얘기하는데,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건 당이 해결한다고 믿고 있는데, 당이 무슨 신인 줄 아나?"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당은 우리를 해방시켰고, 실제로 모든 것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결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그럼 너 자신은 뭐냐? 당과 관계없는 너 자신 말야."
"난 인민의 한 사람이고, 당과 인민에 복무하는 인민해방전사다."
"그런 판에 박은 말말고, 개인적인 너 자신의 인생 말야."
"개인적인 나 자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사람은 서로서로 얽혀 사는 것인데 개인적인 나 자신이 있을 수 있는가?"
체제의 차이는 개인적인 삶에 대한 인식 여부에서 갈리는 것 같고, 그 차이는 삶과 세계를 바꿔놓을 만큼 거대한 것 같다. 그리고 모택동 주석의 '자유주의 배격 십일훈'에 대한 내용도 있다.
첫째, 동창, 친지, 부하, 동료으이 잘못을 알면서도 책하지 않고 화평의 수단으로 방임해서는 안된다.
둘째, 전면에서 말하지 않고 배면에서, 회의에서 말하지 않고 회의 후에 이러쿵저러쿵 시비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셋째, 타인을 책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을 명석한 보신술이라고 치고 침묵하는 것은 잘못이다.
넷째, 간부라고 해서 자기 의견만 고집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다섯째, 개인 공격을 일삼아 보복하려는 태도는 좋지 않다.
여섯째, 반혁명분자의 말을 듣고도 당 기구에 보고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일곱째, 선전, 선동하지 않고 당원의 임무를 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여덟째, 군중의 이익에 해독이 되는 행동을 보고도 격분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하다.
아홉째, 자기가 맡은 바 일에 충살히자 않고 하루를 되는 대로 지내는 것은 좋지 않다.
열째, 선배연하여 큰 일을 할 능력은 없으면서 작은 일을 하기 싫어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
열한번째, 자기의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것, 또는 자기를 반성하되 비판과 실망으로써 그치고 마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자유주의 배격 십일훈'이라고 되어 있지만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 구성원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 정도로 봐도 될 것 같고, 몇 개는 빼고 어느 정도는 지금의 우리의 삶과 우리의 사회에 적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옛날에도 공동체를 흐리는 꼴 같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서 이런 것들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9권에 보면 덕유산 비밀회의 장면이 나온다. 덕유산에서 각도당 위원장과 남부군 사령관이 이현상이 만나 조직 개편과 투쟁 방침에 대한 회의를 하는 장면인데, 이현상 평전에도 나왔던 장면이라 인상깊었다. 소설과 이현상 평전의 공통점은 조직 개편에 대한 내용과 이에 반발하는 전남도당위원장 박영발과 전북도당 위원장 방준표가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점은 소설은 이 두 도당위원장의 반대 의견을 자세히 담았고, 이현상 평전에서는 간단하게 다루었다는 점이다. 이현상 평전도 전기이지만 문학적인 성격이 있으므로 구체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핍진감을 느낄 수 있었고,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내용을 두 개의 작품에서 다루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읽다보면 남해여단장의 얘기가 나오는데, 남해여단장은 인민군으로 전쟁에 참전했다가 퇴로가 막히자 입산을 했지만 인민군은 도당과는 다른 지휘체계를 가진다며 도당의 명령을 거부하고, 싸움도 하지 않는 빨치산의 골치거리였다. 결국 도당위원장의 뜻에 따라 설득하려 했지만 되지 않자 총살을 당한다. 그를 두고 안창민은 "지친 혁명가의 허무적 초월주의"라는 애매한 표현을 썼고, "혁명가가 지치면 그것 자체가 죽임이다."라는 말도 했다. 이 말이 인상적이었다. 혁명의 지난함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까? 지칠 수밖에 없는 혁명의 과정 속에서 지치는 것은 곧 죽음이라는 말은 그래서 혁명이 위대할 수밖에 없다는 역설이 아닌가 싶다.
지리산으로 산악이동투쟁을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지리산의 서북부는 전북도당, 서남부는 전남도당, 동남부는 경남도당, 동북부는 지리산 지구가 배치되는 장면과 손승호가 박두병과 함께 지리산을 관찰하는 장면은 지리산에서 각 조직이 어떻게 움직였는가를 보여준다. 이 장면이 꽤 자세히 나오길래 실제 지도를 찾아 보며 지형을 상상하니까 내용이 더 잘 이해가 되었다. 또한 이후에 지리산의 여러 봉우리와 골짜기 이름들이 나올 때 그 위치를 상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지리산에 꼭 가서 이 부분을 상기시키고 싶다.
이해룡이 빨치산들에게 등을 돌리는 인민들에 대해서 기회주의자라고 말하자 김범준이 이를 설득시키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쉬운 말로 그들을 기회주의자라고 합시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바로 우리들 아닙니까? 그들은 기회주의자들이 아닙니다. 언제까지나 혁명된 세상을 바라고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다만 생존의 상황이 달라지게 되니까 어찌할 수 없이 그 겉모습을 바꾸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다랄진 겉모습을 문제삼기 전에 우리가 지키지 못한 약속 때문에 그들이 우리한테 가질 실망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상황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치열하게 투쟁해얄 것 아닙니까? 그러자면 우리가 믿을 건 누굽니까? 인민일 뿐입니다. 인민의 도움을 받자면 우리는 지난 날보다 더욱 인민 앞에 겸손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강압적인 방법을 쓸 때 우리의 최대 목표인 혁명은 파괴되어버리고 우리는 더러운 폭도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민들은 우리를 완전하게 외면하게 됩니다. 우리가 인민 앞에 전보다 더 겸손하고 진실해도 인민들의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건 우리가 약속을 실천하지 못한 대가로 인민들에게 받는 대접이니까 당연히 감수해야 합니다. 세 끼에서 두 끼로, 두 끼에서 한 끼로, 한 끼에서 굶게 되는 형편에 처하더라도 우리에겐 인민을 강압해서 양식을 뺏을 권한은 없는 겁니다. 굶으면서 싸우다가 죽어가는 것, 그것이 혁명전사의 순결이고 인민들에게 신뢰를 심는 길이고, 다음의 역사에서 혁명이 성취되게 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겁니다. 혁명은 적에게만 폭력적인 것이지 인민에겐 끝없는 신뢰와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혁명전사는 외롭고 또 위대한 것이오.
혁명전사의 순결과 외로움, 인민에 대한 끝없는 신뢰와 사랑.. 혁명전사가 이런 마음가짐으로 혁명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니 혁명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관한 것이다. 어떻게 포로수용소에서 반공포로와 공산포로들이 자체 조직을 가지면서 대립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게 미군의 규정에 따라 자체 조직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었고, 그 안에서 간부들이 생기고, 간부들을 중심으로 이념의 색깔을 띠게 된 것이었다.
등장인물들의 활동상을 정리해본다.
좌익인물
염상진은 전남도당 부총사령관으로서 빨치산을 이끌다 1953년 9월 포위되어 자폭한다.
김범준은 인민군 소장으로서 전남도당사령부에서 빨치산을 이끌다가 조직 개편으로 지리산 지구 사령관을 맡아서 싸우다 1953년 9월 피아골에서 죽는다.
박영발은 전남도당 위원장, 총사령관으로서 빨치산을 이끈다.
박두병은 전북도당 정치위원으로 빨치산을 이끈다.
손승호는 전북도당 문화위원으로 입산하여 활동하다 연예대에서 희곡과 시, 소설을 쓰다 재귀열에 걸렸으나 극복한다. 51년 동계 대공세에 간신히 살아남고 52년 8월 위장전향을 하러 내려오는 도중에 토벌대의 총에 맞아 죽는다.
박난희는 덕성여중을 나오고 단역배우 출신으로 전북도당 연예대에서 노래와 연극을 하며 활동하며 손승호에게 연정을 가진다. 52년 동계 대공세 때 죽는다.
하대치는 조계산 지구 기동대장으로서 빨치산을 지휘하다 조직 개편으로 지구 부사령관이 된다.
강동기는 조계산 지구의 소대장이 되었다가 조직개편으로 중대장이 되고, 52년 여름 총알 보투를 나갔다가 죽는다.
천점바구는 조계산 지구의 소대장이 되었다가 조직개편으로 중대장이 되고, 이대대장까지 올라가지만 52년 2월 대공세에 죽는다.
이지숙은 조계산 지구 여맹위원장으로 후방부 사업을 조직하면서 활동하다 안창민과 결혼하여 함께 투쟁을 벌이다 발각되어 무기징역을 받는다.
안창민은 조계산 지구 정치위원으로 활동하다 이지숙과 결혼하여 위장전향하여 인민 속에서 투쟁을 벌이다 발각되어 무기징역을 받는다.
외서댁은 하산하지 않고 천점바구의 소대에 배정되어 화선투쟁을 한다.
김혜자는 순천여중 출신으로 기본출인 천점바구를 마음에 두고 있다가 52년 2월 대공세에 천점바구가 총에 맞자 그 옆에서 그를 지키다가 함께 죽는다.
이해룡은 장흥 유지 지구에서 조직 개편으로 지리산 지구 부사령관으로 옮긴다. 1953년 9월 피아골에서 죽는다.
소화는 광주에서 정하섭과 헤어지고 입산 후 임신한 것을 알게 되어 하산하여 후방부 사업을 하다 체포되어 감옥에서 정하섭의 아이를 낳는다.
들몰댁도 소호와 같이 후방부 사업을 하다 체포된다.
김복동은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재귀열로 사망한다.
마삼수는 51년 동계 대공세에 죽는다.
김종연과 서인출은 빨치산 병기과에서 총알과 수류탄을 만들면서 활동하다 52년 1월 동계 대공세 때 죽는다.
이태식은 백아산지구 연대장으로서 부대를 지휘하다 53년 2월 포위되어 자폭한다.
조원제는 백아산지구 분트요원을 하다가 문화부중대장을 맡아서 정치일꾼으로서 일하고, 조직개편으로 지도원 겸 부정치위원이 된다. 1952년 8월 화순 거점책의 배신으로 발각되어 감옥에서 역사투쟁을 전개한다.
강경애는 오빠로부터 교육을 받고 오빠가 죽자 백아산지구 이태식 부대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52년 여름 보투 하다 죽는다.
노만석은 조원제가 분트요원할 때 소대장이었고, 조원제가 부상을 당하자 문병도 온다.
강대진은 열일곱살로 빨치산 아저씨들이 좋아서 입산을 했고, 염상진의 연락병으로 활동하다 51년 동계 대공세 때 죽는다.
이현상은 남부군 사령관으로서 남부지방 빨치산을 총지휘하다 휴전 후인 1953년 9월 빗점골에서 죽는다.
정하섭은 평양의 김일성대학 유학 중 미군의 공격으로 만주 통화의 군관학교에서 교육을 받다가 이학송을 만난다. 다시 인민군으로 전쟁에 참여하였다가 후퇴 중에 포로로 잡혀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수용되고 거기서도 조직부책을 맡는다.
이학송은 만주의 통화까지 피신하면서 인민군신문을 만들고, 취재중 정하섭을 나고 인민군이 다시 서울을 점령하자 서울로 가서 다시 신문을 제작하면서 가족을 찾지만 끝내 찾지 못한다.
이원조는 해방일보 편집국장으로서 만주의 통화까지 피신했다가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서울로 돌아온다..
김미선은 해방일보 기자로서 만주의 통화까지 피신했다가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서울로 돌아와서 가족을 만난다. 그러나 다시 연합군의 공격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가족을 떠날 수 없어 남았다가 체포되어 전향 권유를 받아들이지만 갈등한다.
우익인물
최인석은 송경희를 마음에 두고, 송성일을 통해 송경희에게 접근하려고 하지만 국민방위군에 징집되어 대구로 가던 길에 굶어죽는다.
송성일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국민방위군에 징집되었다가 옥천 부근에서 탈출한다.
송경희와 최서학은 고향에서 만나 서로를 이용할 목적으로 몸을 섞는다.
양효석은 중대장으로서 공비 소탕 작전에 참여하다 거창군 신원면 양민 학살을 주도한 후 보성군 계엄사령관으로 고향으로 돌아와서 근무하다가 부대 이동으로 최전방에 배치되고 부상으로 병원에 후송된다.
염상구는 청년단장에서 준군사조직인 청년방위대장이 되어 활동하고, 윤부자네 윤옥자를 빨갱이로 몰아 범하고 결혼하여 재산을 늘인다.
최익승은 부산에서 군사물자를 빼돌려 이익을 챙기고 있다.
최익달은 정현동의 술도가를 차지하고 새로 개업한다.
선우진은 특무대에서 일하다 휴전이 될 것 같아 신문기자나 대학교수 중 어떤 것을 할지 고민하여 결국 신문기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중도인물
심재모는 대구 근방의 학도병 훈련소에서 동료 장교의 비위를 거론하다 헌병대게 가서 빨갱이로 몰리기도 하고, 동료 장교의 비리에 가담하라는 제안을 뿌리치자 동부전선으로 전출 당한다. 동부전선 고지전에서 수류탄 파편을 맞아 병원으로 후송된 후 완치하여 원주 하숙집에서 순덕이를 찾지만 만나지 못한다.
김범우는 미군 정보부에서 통역을 담당하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선이 내려오자 탈출하여 인민군에 투항하여 인민군 통역 담당이 되어 서울에 들어와서 이학송을 만나고, 후퇴 중 폭격으로 포로가 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된다. 거기서 취재차 온 민기홍을 만나 다리 수술을 받는다. 또한 수용소에서 정하섭을 만나 반공포로로 위장전향하여 인민 속에 침투한다.
민기홍은 신문사에서 일하다 1· 4 후퇴 때 피난을 간다.
김사용은 자식들을 곁에 두지 못한 채로 죽는다.
이근술은 지서장을 사직하고 벌교에서 뻥튀기 장수를 하다가 복직 권유를 받지만 거절하고, 서민영의 제안으로 야학 교사를 한다.
서민영은 여전히 기독교 공동체에서 야학을 한다.
다 읽고나니까 예전에 읽은 것은 읽은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치산들의 역사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 역사를 위한 치열한 삶과 죽음을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대학교 때 노래패에서 빨치산에 대한 공연을 하면서 실제 비전향 장기수 분을 모셔서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이 "인민공화국과 당에 대한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을 그 때는 이해할 수 없는데, 태백산맥을 읽고나니까 내가 정말 대단한 분을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