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의 접속/사회
[책 24] 생애의 발견: 모든 세대의 모든 이야기
뚝샘
2010. 7. 26. 16:24
|
이 책은 모든 세대의 한국인들의 현재 삶을 짚어 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답은 주지 않지만 생각은 하게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전 생애에 대해서 시선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기는 교육의 문제를 다루면서 사람들이 많이 다루고, 이삼십대의 문제는 실업 문제를 다루면서 다루고, 중년의 문제는 건강의 문제에서 다루지만, 유아기와 아동기, 장년기와 노년기의 문제는 심도있게 다루지 않는다. 또한 다른 세대와 일관된 관점에서 다루지도 않는다. 비중도 적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모든 세대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삶의 문제에 대해서 골고루 짚어주면서 2000년대 한국인의 삶에 대해서 정확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먼저 머리말에 있는 이 책을 쓴 이유에 해당되는 부분을 찾아보자.
지금 모든 세대는 생애의 매 단계마다 윗세대가 경험하지 않았던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다. 산업의 성격, 인구구조, 정치지형, 행정 시스템, 지역사회, 소비 감수성, 미디어 환경 등 모든 것이 급변하는 가운데 계속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거나 적응해야 한다. 수명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각 단계의 구성이 크게 달라진다. 청년기와 노년기는 점점 길어지는 반면, 마음껏 뛰어놀 유년기와 '한창 일할 나이'는 갈수록 짧아진다. 일생에 걸친 '발달 과업'이 만만치 않다. 어느 세대 할 것 없이 구군분투 중이다. 어떤 모습의 어른으로 성숙할 것인가. 행복하게 늙어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답을 찾기 위한 준거도 없이 저마다 암중모색하고 있다. 생명의 약동은 가능한가. 뒤죽박죽 얽히고 꼬이는 시공간에서 삶의 질서를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자신의 세대 뿐만 아니라 다른 세대의 문제를 보면서 세대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1. 놀지 않는 아이들
아동기에 아이들은 더이상 놀지 않는다. 그들의 유일한 벗은 게임기이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서로 관계를 맺는 것을 배우지 못하게 되어 고립되어 성장하는 아이들이 생긴다. 이런 아이들에게 글쓴이는 야외활동을 통한 놀이를 제안하고 있다. 놀이는 규칙에 대한 이해와 동시에 규칙을 만드는 창의성까지도 키워줄 수 있다. 또한 야외활동은 신체활동을 통하여 두뇌의 발달을 촉진할 수 있다. 이런 활동 없이 공부에만 매달린다고 해서 아이들이 똑똑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아이들의 놀이집단이 스포츠 클럽이나 체육 학원에서 이루어진다. 동네 놀이터에 아이들은 없고, 엄마들이 알음알음으로 모여서 체육학원을 다니면서 같이 운동하면서 놀이집단을 이룬다. 이 집단도 배타적이어서 부모의 학력과 수입 등을 고려하여 끼리끼리 모이게 되어 시기를 놓쳐서 나중에 들어가려고 하면 진입장벽이 높아 부모의 무관심으로 친구 없는 아이로 전락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게임이나 인터넷에만 빠지기는 정말 쉽다. 현재 우리의 상황이 이런 상황인데, 글쓴이의 제안대로 하려면 귀농을 하는 수밖에 없다.
2. 청소년기
청소년기의 특징 중에 빈궁한 언어를 들고 있다. 청소년들은 욕을 하면서 자신의 불량기도 충족시키고 동료집단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기도 하지만 이것이 지나쳐서 욕 없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 지경까지 가게 되면 생각과 정서를 조잡하게 격하시키게 된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어서, 사회에 진출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격조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수도 있다. 이런 원인 중의 하나는 청소년들이 또래집단하고만 소통하기 때문이다. 부모 이외의 다른 어른들과 이야기 나누지 않고, 친척들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청소년의 인간관계가 너무 좁다. 예전의 마을 공동체에서는 청소년의 인간관계나 어른들의 인간관계나 같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들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 다음으로 교육의 문제 중 평가와 경쟁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공부가 아니라 시험이 어려운 것이다. 높은 등수를 차지하고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는 경쟁이 버거운 것이다. 공부 그 자체는 재미있는 두뇌 및 신체활동으로서, 자신의 능력과 속도에 따라 배워가면 수월하다. 그런데 모든 공부가 점수 따기로 환원되다 보니, 그 본질을 망각하고 편차치에 집착한다.평가와 경쟁이 절대화되고,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얘기이다. 평가와 경쟁이 다른 이들과의 차이를 양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인데, 질적인 차이를 보여줄 수 있는 것에 노력하는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경쟁도 필요하고, 평가도 중요하다. 그러나 평가를 잘 받는 것, 경쟁에서 이기는 것 자체가 공부의 최종적 목표가 될 때 배움은 고역이 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불안해진다. 대입이라는 한판 승부로 이후의 인생의 등급이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점을 찾아내 키워 주는 '교육' 대신 약점을 체크해 서열을 매기고 탈락시키는 '평가' 시스템이 절대 권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제 나름대로 인생의 빛깔을 만들어가기는 무척 어렵다. 시험은 인생의 긴 여정에서 통과하는 수많은 경험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다양한 평가가 작동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3. 이십대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사느라 그것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도그마에 걸려들지 마세요.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결과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타인들의 의견이라는 소음이 당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를 집어 삼키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진정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모든 것들은 부차적이지요."다른 사람들의 말에 자신을 잃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의 생각대로 사는 삶을 경계하는 말이다. 이 말대로 살려면 먼저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하고, 자신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먼저 필요할 것 같다.
-스티브 잡스
4. 연애
연애가 주는 뿌듯함의 본질은 무엇일까? 현대인들은 자기가 살아있다는 증거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학교와 회사에서는 거대한 관료제에 갇혀 지내야 한다. 엄격한 규율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개인은 통제와 조종의 객체 또는 사무처리와 평가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거기에서 마모된 자존감을 보상하는 영역이 바로 소비세계이다. 그러나 상품 미학의 코드와 규격 속에서 구매와 소유의 맥락을 떠나 자기를 실감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듯 스스로의 뜻대로 삶을 꾸리지 못하고 정체성이 희박해지는 시대에 연애는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처럼 여겨진다. 명령과 위계의 경직된 질서를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하고 소통하는 해방구가 거기에서 발견된다. 그 안에서 자신은 온전한 인격체로, 더 나아가 유일하고 특별한 사람으로 확인된다. 사랑은 그러한 상호승인을 향한 열렬한 소통이다.연애, 혹은 사랑은 그냥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회학적으로는 누군가에게 존재감을 인정받는 열렬한 소통이란다. 하긴 연애의 상황이 아니라면 자신을 특별하게 대우해주는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게 바로 사랑이 주는 짜릿함이란다.
5. 결혼
축하는 해줄 수 있어도 축복은 어렵다. 현대 결혼식에서 하객이 들러리 위치에 있는 이상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결혼식의 하객이 함께 축제를 즐기면서 축복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스토리텔러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객이 신랑 신부에 대해서 짤막하게 과거를 회고하고, 축복하는 것도 가능하고, 신랑신부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얘기하는 식으로도 할 수 있다. 그러려면 모르는 사람들까지 다 초대할 필요없고, 정말로 축하받고 싶은 사람들로 규모를 줄여서 해야 한다. 그동안 투자라고 뿌린 축의금을 다 돌려받을 생각 버리고, 소박하게 마음을 전하고 받는 것에 투자하면 축복은 가능하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6. 부부의 감정
더글러스 스톤은 『대화의 심리학』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흔히 감정적으로 되는 것과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을 혼동하는데 그것은 서로 다르다. 감정적으로 되지 않고도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가 하면, 아무 것도 표현하지 못하면서 극도로 감정적으로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감정에 대해서 제대로 분명하게 말하려면 신중해야 한다."단순히 부부 사이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관계에서 다 필요한 말인 것 같다.
7. 아버지와의 불통
아버지로서 자식과 대화를 하려고 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된 이유는 가정과 일터가 분리되면서 아버지의 삶이 온전히 아들에게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삶을 모르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존경이나 경외감 등은 가질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훈계는 권위만을 내세우는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글쓴이는 이에 대한 제안으로 아버지의 삶을 보여주기를 권한다. 자식에게 삶의 애환도 담담하게 털어놓기도 하면 자식들도 부모의 진정한 모습,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되고,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8. 노인을 보는 시선
'영원한 젊음'의 신화는 기력이 약해지고, 병들고, 또 죽음에 근접해가는 등 노년의 고유한 경험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곧 노년 담론의 증발이다. 나이 듦에 필연적으로 부수되는 육체적 쇠퇴, 의존, 죽음 등의 과정에 아무런 도덕적,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후기산업사회의 문화는 이제 육체적 쇠락이나 죽음과의 대면 자체를 회피한다. 그 결과 문화가 의미부여를 포기한 늙음과 죽음의 과정은 혼란스러운 개인들이 사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삶의 과정이 된다.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젊음을 받들고 늙음을 회피한다. 그러면서 늙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조차 싫어하면서 늙음과 죽음은 당사자 혼자서 짊어지고 가야 하는 고독한 짐이 되어 버렸다. 우리에게 늙음의 문화가 있는가 봤을 때 긍정적인 답을 하기 어렵다. 노인대학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춤추고, 근육맨 할아버지가 텔레비젼에 등장한다고 해서 늙음의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 늙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리고 다함께 늙음과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삶과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있어야지 문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노인들의 삶이 구차스러운 지경에 떨어진 것은 단순히 물질적 궁핍 때문만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자아를 지탱해 주는 문화를 상실한 탓이다. 문화는 긴 세월 속에서 서서히 변화하고 축적된다. 문화적인 창의력과 수용능력은 꾸준한 학습과 연마를 필요로 한다. 지금의 노인들은 그러한 시간과 잉여를 허락 받지 못한 채 황혼을 맞이했다.노인들의 자아를 지탱해 주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9. 죽음
죽음은 늘 삶과 함께 있다. 살아가는 것은 결국 죽어가는 것이기도 핟.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회피의 대상으로 보았다. 납골당이나 화장터, 묘지 등을 혐오시설로 여기고 자기 주변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죽음을 가까이에서 접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임종은 가정이 아닌 병원에서 지키게 되었고, 그것은 일상적인 일이 아니게 되었다. 결국 죽음의 과정에서 가족들은 붙잡으려고만(회피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죽음의 당사자인 노인은 외롭고, 고통스럽게 죽음을 만나게 될 수밖에 없다. 죽음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노인들이 좀더 편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가져갈 수 있게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여기에 내가 뽑은 이야기들 외에도 글쓴이는 더 많은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은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면 중학생부터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지만, 최소한 고등학생부터 노년층의 사람들까지 자신의 삶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