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의 접속/사회
[책 13] 다시 마을이다: 위험사회에서 살아남기
뚝샘
2010. 5. 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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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위험사회에서 살아남기'이다. 작가가 그동안 써온 글들을 모았는데, 근대사회, 청소년, 학교, 마을 공동체 등에 대한 내용이다. 해법은 무엇인가? 글머리에 이에 대한 얘기가 제목과 관련지어 나온다.
시대 분석은 끝났지만 구체적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런데 해법은 최소한의 안정성을 확보한 상황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을이 없는 사람들, 신뢰하는 준거 집단이 없는 사람들은 파편화된 조각으로 불안하게 서성이다 거대한 고도 관리 체제에 포획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대를 헤쳐 나갈 방법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보이지 않을 겁니다. 사실 해법은 마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나 보일 겁니다.그러면서 사람들을 모아 마을을 잘 이루라고 말한다. 결론은 나왔는데 가는 길이 쉽지 않아 보인다.
내용 중 인상적인 부분들을 뽑아보았다.
어학연수로 많은 돈이 지출되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는 상황에서 글쓴이는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얘기한다. 청소년 전용 숙소인 유스호스텔의 활성화와 청소년 여행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여 어학연수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정한 경계 넘기를 통한 이해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한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는 만 20세가 되면 2천만원을 주고 니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 하라고 한다고 한다. 그러면 그들 대부분은 유럽을 여행하면서 자유와 낭만을 누리며 인생을 설계하고, 국제적인 감각도 쌓는다고 한다. 우리가 그만한 돈을 청소년에게 줄 수는 없지만, 그런 분위기라도 만들면 좋지 않을까? 입시 경쟁에 찌들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사는 인생, 솔직히 불쌍한 것을 넘어서 비참해 보인다.
학교의 자율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뼈 속 깊이 울림이 있는 말도 내뱉는다.
교육계가 자율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교육인적자원부가 다른 정부부처로부터 상대적 자율권을 갖는다는 마일 것이고, 교육청이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상대적 자율권을 갖는 말일 것이며, 교장이 교육청으로부터 상대적 자율권을 갖는다는 말일 것이고, 교사가 교장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는 마일 것이며, 학생이 교사나 학교장으로부터 상대적 자율권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자율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소통 가능한 공동체'의 형성이다. 등하교 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하고 자율 학습 시간을 정하는 일은 교장단과 학부모와 교사와 학생들이 토론 가능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상태라면, 회의만 소집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다.학교의 자율은 학교장의 자율이 아닌 모든 구성원의 자율이고 이는 서로 소통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학교는 여기에 미치기에는 아직인 모습이지만 다음 달에 새로운 교육감이 등장한다면 가능도 하지 않을까 싶다.
근대사회는 노동과 놀이를 분리시키고, 우리의 몸을 노동의 몸으로 만들어왔다. 그러나 후기 근대에 와서는 노동의 몸을 거부하고 놀이의 몸을 복원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
고도 관리 사회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운 공간'은 '몸' 하나뿐임을 감지한 이들은 패션에 지대한 관심이 있으며, 온갖 놀이와 운동과 명상을 통해 새로운 놀이적 몸을 만들고, 서로의 존재 자체를 축복하는 파티를 열면서 '노동하는' 몸을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피어싱과 문신도 이런 시대적 표현의 일종으로 부상된 문화적 행위다.학생들이 교복을 그대로 입지 않는다. 여기 저기 수선해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변형한다. 그냥 다니면 꽉 막혔다고 생각한다. 머리도 마찬가지이다. 방학이 되면 미용실이 염색과 퍼머를 하기 위한 학생들도 붐빈다. 전에는 일부 날라리들만 신경을 썼던 패션과 머리에 대한 관심이 이제는 거의 모든 학생들에게서 보이는 현상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몸에 대한 자기 주장, 자기 권리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고, 입시 경쟁의 학교 문화에 대한 소극적 저항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두발 자유와 교복 자율화가 이제는 필요할 것 같다.
여기에는 학교와 청소년 얘기만 했는데, 뒤에는 마을 공동체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어떻게 보면 약간 이상적인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마포의 성미산 공동체의 경우를 보면 불가능한 것 같지도 않다.
정말 위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