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의 접속/사회
[책 80] 당신들의 대한민국 1 : 우리가 보지 못하는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들
뚝샘
2009. 10. 16. 12:27
|
특이한 이력을 가진 박노자 교수의 책을 읽었다. 박노자 교수는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한국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에 유학을 왔고, 경희대에서 강의도 했고, 한국에 귀화를 해서 지금은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한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인이 아니었지만 한국인이 되었고,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한국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이렇게 자유롭게 자신의 국적을 이동시킬 수 있고, 자신의 생활 공간을 바꾼다는 것이 퍽 신선했다.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 보통의 한국인들보다 더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지식과 시각은 더 신선했다. 그 중 몇 가지 내용을 뽑아보았다.
먼저 한국의 군대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는지에 대해서 얘기한다.
"실컷 맞다가 나중에 속시원하게 실컷 때리고, 조직사회의 원리를 제대로 터득했다. 이제 시키는 대로 할 줄도, 시킬 줄도 안다."폭력 앞에서 양심을 뒤에 놓아도 아무런 거리낄 것이 없는 사회 분위기를 군대가 조성했다는 것이다. 군대를 나와도 군대에서 배운 것들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리로서 작용한다. 결국 군대가 파시스트 국가의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매우 함축적인 이 말을 조금 바꿔서 표현한다면, 군대에서 폭력을 수반하는 권위주의를 잘 체득했다는 것이고, 심적인 폭력(맹종과 강요)과 물리적인 폭력에 완전히 무감각해졌다는 것이다. 형식적이나마 폭력에 대해 최소한의 도덕적 평가라도 내릴 만한 인간성마저 파괴된 셈이다.
한민족의 역사에 대한 얘기도 한다.
한 종족의 형성이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이질적 요소가 첨가, 융합되는 복합적인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까닭에, '민족'에게 뚜렷한 '기원'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그들(민족주의자)의 이해 밖이다. 그리고 단선적이고 뚜렷한 '기원'을 가지는 '국사'보다 지역적, 문화적, 계층적 요소를 서술해 주는 미시사의 종합이 객관적인 사실(史實)에 훨씬 가깝다는 것을 그들은 전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국지적이며 다선적인 미시사보다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한 민족의 하나의 국사'가 '우리'의 자랑으로 삼기에는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한국, 한민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과정을 역사 속에서 살펴보자면 수많은 타 민족과의 교류와 침입 등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여기까지 왔겠지만, 그 가운데에는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별로 내세우고 싶지 않은 내용들도 있을 것이다. 순수한 민족의 범주를 넘나드는 것일테니까. 그러나 그것이 엄연한 사실이라면, 우리의 역사, 우리 민족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제는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유럽에서는 역사 공부를 국가사가 아니라 유럽사를 배운다. 국가는 근대의 개념이고, 근대 이전에는 하나의 유럽 역사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기 때문이다. 동북아라고 그렇게 달랐을까? 유럽처럼은 아니더라도 한중일을 아우르는 동북아사를 중심으로 역사를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신화를 봐도 우리의 신화가 중국의 신화와 많이 겹치는데 이것은 결국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거나 서로를 굳이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몽골인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방법도 알려준다.
'상부상조'는 서울의 정글을 헤치고 살아가야 하는 몽골인들의 철칙이다. 배고픈 동족을 만나면 마지막 돈이라 해도 있는 대로 다 내서 그를 먹여주어야 한다. 집이 없는 동족을 만나면, 비록 사람의 평균 신장보다 작은 구석방에서 새우잠을 자는 신세라 해도 같이 재워주어야 한다. 그리고 우울하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동족을 만나면, 같이 술을 먹고 고향 노래 몇 가락을 불러주어야 한다. 이런 철칙 때문에 서울과 같은 '불모지'에서 '불법체류'라는 족쇄를 덮어쓰면서도, 절대적 약자이자 소수인 몽골인 커뮤니티가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약육강식을 위주로 하는 천민 자본주의의 공간에서 한 개인으로서 패배와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그들은 절대적인 상부상조로 승부한다.서로를 돕는다. 자신이 힘든 상황이지만 마지막 남은 인간에 대한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과 사람을 두고 선택을 할 때 돈이 아닌 인간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쩌면 바보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선택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매우 크다. 우리가 잊고 있던 것, 인간에 대한 존엄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이밖에도 대학, 종교에 대한 얘기들도 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우리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