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10]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내가 누군가의 선물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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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교수는 참 순진한 사람 같다. 세계화나 자본주의 같은 거대한 화두에 맞서서 사랑과 우정, 지역 공동체 같은 소박한 개념을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소박한 개념들이 모여서 현실의 삶에서 실천으로 이행된다면 그의 순진함은 충분히 의미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돌아다니는 것 같다.
이 책은 세계화나 자본주의에 대한 전문적인 서적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조금 가볍게 끄적인 에세이이다. 제목을 보고서 내용이 거창할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책의 크기와 두께, 그리고 목차를 보면 그런 생각은 사라진다.
1장에서는 우리의 삶을 들추어내 본다. 우리의 삶은 지금 일에 파묻혀서 삶을 위한 일인지, 일을 위한 삶인지 구분이 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도 나뉘어져 인간은 자연을 대상으로 보고 마구 훼손하고 있다. 또한 생각 따로 실천 따로 하고 있다. 이런 삶의 모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참된 행복이란 무엇인지 성찰하고 근원에 충실하여 새 출발을 해야 한다.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삶을 다시 둘러봐야 한다는 얘기다. 참 소박하지 않은가?
2장에서는 이 책의 주제와 관련되는 경쟁이 어떻게 내면화되는가에 대한 얘기이다. 경쟁의 시작은 모르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경쟁을 하고 있고, 경쟁을 하는 이상 뒤쳐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방향도 모른 채 달리고 있다. 그리고, 경쟁을 왜 하는 것인지 생각하려고 속도를 늦추려고 하면 그 사이에 뒤쳐지는 것이 두려워 속도를 늦추지도 못한다. 이게 우리의 모습이다.
이런 경쟁은 어떻게 우리에게 내면화되었을까? 강교수는 '강자와의 동일시'로 설명한다. 즉, 엄청난 폭력을 만났을 때 선택은 둘 중 하나다. 도망가거나 맞서 싸우거나. 그러나 도망갈 수도 없고, 맞서 싸워봐야 결과가 뻔하다면? 충성과 복종이다. 그러면 폭력에 대한 두려움은 안도감으로 변한다. 그리고 나는 그 폭력과 한 편이 되어 폭력을 행사한다. 경쟁에 저항을 하다가 '경쟁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고 하다가 '경쟁이야말로 인간과 사회 발전의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반복한다. 그럼 이런 경쟁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탈경쟁이 자아내는 두려움을 깨는 것이고, 다음에는 연대의 실천으로 그 두려움을 축소하고 에너지의 분출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경쟁이 우리를 분열시킨다면 연대를 통해 관계적 존재로 다시 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소통과 연대가 되기 위한 사회구조적 밑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공정한 시장에 맡겨야 할 부문과 민주적 정책에 맡겨야 할 부분을 구분해야 한다. 예컨대 농업, 교육부문, 토지와 주거부문, 의료와 복지부문, 기간산업, 기초 산업 등은 시장 경쟁이 아니라 민주정책에 맡겨야 한다.우리 나라가 이런 방향으로 가려면 정말 쉽지 않은 길을 가야겠지만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전략이 필요하다
셋째, 직접소득 감소부분은 지출부분을 대폭 공동체적으로 해결함으로써 풀어낸다. 예컨대 주거비용, 교육비용 및 의료비용을 공동체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개인 부담을 줄인다.
넷째, 사회적 자원의 민주적 재분배를 통해 재원을 조달한다.예컨대, 소득세 및 재산세의 누진제 강화, 부정부패 고리 차단과 압수, 탈세 및 누세의 방지와 추적, 군사비용 절감, 불요불급한 공공투자의 절감 등을 통해 재원을 확충할 수 있다.
다섯째, 일자리의 내용을 변화시켜야 한다. 건강증진, 인격향상, 공동체와 생태계의 발전에 도움 되는 일자리는 확대, 그렇지 못한 것은 축소 내지 폐지해야 한다.
여섯째, 경제, 경영분야도 위와 같은 논리로 구조혁신한다.
일곱째, 민주정치의 진정한 자기역할은 과도기적 구조혁신을 겸허한 자세로 측면지원하는 것이다.
3장은 학교가 가르치지 않는 것 열가지라고 하는데, 학교에 있는 사람으로서 가르쳐야 하는데 가르치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었나 되짚어 보게 된다.
이 10개 중에서 내가 가르친 것 당연히 하나도 없고, 특히 학생부에 있기 때문에 여섯째를 많이 가르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가르쳐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그냥 말로 이렇다고 설명하기에는 애들에게는 너무 어렵고, 설사 아이들이 이 내용을 이해한다고 해도 학교에서 이런 것을 가르친다고 했을 때 학부모들의 반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현실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분들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 내용들이 이 사회를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데에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첫째, 공부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한 삶이란 것을 일관되게 가르치지 않았다.
둘째, 대학이란 그 자체로 공부의 끝이 아니라 비로소 '큰 공부'를 시작하는 곳이라는 점을 가르치지 않았다.
셋째, 우리 사회가 '상중하'라는 사다리 질서로 되어 있어, 우리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깨 놓고 보면 결국은 상층부로 진입하여 기득권을 많이 차지하려는 것이라는, 삶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넷째, 인재, 영재, 천재과 같은 말들이 결국은 아이들을 삶의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 써먹기 좋은 자원, 즉 수단으로 보는, 잘못된 철학에 기초해 있음을 가르치지 않았다.
다섯째, 초중고에서 수백번 반복하여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만, 진정으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았다.
여섯째, 초중고 학생들도 단지 아직 어른이 아니라는 뜻에서 미성숙한 학생이 아니라, '나날이 자라는 인격체'임을 가르치지 않았다.
일곱째, 각종 시험에 대해 무조건 잘 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실상 이런 시험문제야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 잊어버리 것이고 나아가 참된 삶에 별로 필요도 없는 허황된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가르치지 않았다.
여덟째, 입시 경쟁이 결국은 기업들이 써먹기 위한 노동력 경쟁으로 연결되고, 노동력 경쟁은 결국 상품 경쟁, 생존 경쟁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학교는 가르치지 않았다.
아홉째,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타인에 대해 친절하고 우애와 환대의 정신을 갖는 것이 교과서 내용을 외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학교는 일관성 있게 가르치지 않는다.
열 번째, 개인적으로 정직하고 우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을 넘어, 사회질서 자체가 더 이상 사다리 질서가 아니라 '원탁형 질서'로 되어야 사람이 참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학교는 가르치지 않는다.
4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혹은 무책임에 대한 얘기이고, 5장은 구조조정에 대한 얘기이다. 특히 구조조정을 단순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세계화 되는 것을 구조조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의미를 확대시켜서 아래로부터 이 사회를 개혁하는 것도 구조조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6장은 신자유주의와 이에 저항하는 풀뿌리의 반작용에 대한 여러 사례들을 얘기하고, 7장은 아드레 고르 부부, 이반 일리치, 그리고 강교수의 어머니의 죽음을 이야기함으로써 삶과 죽음에 대한 얘기를 한다. 7장은 앞의 얘기와 동떨어져 있을 것 같지만 대안적 생각을 갖고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일상이 변화하면 마침내 세상이 변화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짧은 책이지만 정말 많은 것을 담고 있고, 생각할 것들도 많이 있다. 때로는 너무 비현실적이고, 먼 훗날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현실의 모순을 깨뜨리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렇게 먼 훗날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7장에 나오는 일리치 선생의 말을 다시 음미해 보면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나라고 하는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 선물이 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온전한 인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