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의 복원/영화
[영화 61] 연인들: 일상의 섬세함
뚝샘
2008. 12. 16.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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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감독의 단편 영화 모음 『연인들』을 봤다. 단편 영화 감독의 작품을 Collection으로 묶어서 기획전이나 영화제가 아닌, 일반 상영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이례적이다. 그만큼 김종관 감독의 작품들이 인정받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1. 「폴라로이드 작동법」
대학교 동아리방인지, 아니면 학회실인지 싶은 공간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빌리는 여학생의 이야기이다. 폴라로이드 빌리는 것이 무슨 영화의 소재가 되나 싶겠지만,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주인이 바로 그 여학생이 짝사랑하는 남자 선배이다. 그 선배가 오기를 기다리는 여학생의 마음, 선배가 나타났을 때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설렘, 선배의 얘기가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얼떨떨함, 그리고 끝까지차마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는 바보같은 모습까지 짝사랑하는 여학생의 심리가 섬세하게 그려져있다.
뽀샤시한 조명 속에 드러나는 정유미의 눈빛과 손짓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2. 「누구나 외로운 계절」
4분짜리 영화인데, 남자와 여자가 무료하게 지내다가 열정을 느끼고 사랑을 하고, 멍하고.... 감정의 변화를 얘기하는 것 같은데, 여성이 적극적이고 주도적이었다는 것 외에는 잘 모르겠다.
3. 「낙원 Slowly」
여자가 버스를 타고 가고 있고, 남자와 여자가 한 방에 누워 있고, 여자는 떠나고, 남자는 따라가다 결국 혼자 남는다. 이렇게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게 시간적 구성인지 아니면 시간을 섞어놓았는지 모르겠다. 시간을 섞어놓았다고 생각했을 때 맨 처음 버스를 타고 가는 여자의 장면은 실제 시간에서는 맨 마지막이 되고, 한 방에 누워 있는 장면은 제일 처음, 여자가 떠나고 남자가 남는 장면은 가운데에 놓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자가 남겨놓은 우산을 보여줌으로써 남자의 마음에 여자가 남아있음을 나타낸다.
4. 「영재를 기다리며」
일본에서 유학을 온 여학생이 한국 남자 영재를 기다린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오직 기다린다. 영재는 자주 만나주는 것 같지도 않다. 그래도 기다리는 이유는 한 번 만났을 때의 그 따뜻함이다. 그 따뜻함이 있기 때문에 그 지루하고 불안한 기다림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기다림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5. 「Wounded」
횡단보도에 남자와 여자가 손을 잡고 있지만, 여자의 신발끈이 풀려서 손을 놓고 끈을 묶는다. 그러나 그 사이 신호등은 바뀌고, 남자는 홀로 건넌다. 여자가 신발끈을 묶고 신호를 보니 신호는 바뀌었고, 건너편을 보니 남자 혼자 있다.
연인은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고, 언제든지 무심해질 수 있다. 잠깐의 무관심이 이별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둘의 뜻과는 무관하게 상황이 이별을 만드는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6. 「메모리즈」
자유부인을 모티브로 한 영화인데, 딱 잡히지 않는 영화이다.
7. 「드라이버」
가장 이질적인 영화이다.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모인 가운데, 노숙자의 충동적인 폭력을 담은 영화이다. 빼는 것이 좋았을 영화이다. 굳이 의미를 찾는다면 이질적인 영화를 포함시켜서 다른 영화들을 두드러지게 한다는 것 정도...
8. 「모놀로그 #1」
실연을 하고 겨울바다를 찾은 여자의 독백을 이루는 영화인데, 여자의 개성과 성격이 잘 드러나 있어서 재미있다. 겨울바다를 찾으면 뭔가 있을 것 같지만 추워서 어디 들어가고 싶은 마음과 겨울바다에 왔으니 폼 한 번 잡고 싶은 마음의 갈등도 재미있게 드러나 있고, 혼자 온 여자한테 집적대는 혼자 온 남자도 재미있으며, 그 남자에게 한 방 갈기는 여자의 멘트는 압권이다. 현실적이어서 좋다.
9. 「길 잃은 시간」
역 플랫폼에서 두 남자의 다툼을 그린 영화이다. 왜 두 사람이 다투는지는 말하지 않지만, 화해할 수 없고, 오해하는 모습이 그저 안타까운 영화이다.
10. 「헤이 톰」
두 여자가 있다. 한 여자가 자신의 남자 친구에 대해서 불만을 얘기한다. 그 불만을 들어주는 여자는 그 남자친구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여자들의 수다 속에서 미세한 감정의 변화를 잘 드러내고 있다. 정말 일상적이고 사소한 부분인데 감독은 그런 것들을 잘 포착해서 만든 영화이다.
11. 「올 가을의 트랜드」
남자와 여자가 데이트를 한다. 둘은 체크 무늬 옷을 입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커플룩처럼 보인다. 그러나 단지 그 때 체크 무늬 옷이 유행이라서 그랬던 것 뿐이다. 두 남녀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소설같은 나레이션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영상으로 읽는 소설같은 느낌이다.
김종관 감독의 작품은 처음 봤는데,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섬세한 감정들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단편이라서 그런 것들이 잘 드러났는데, 장편을 만든다면 긴 호흡 속에서 이런 섬세함을 어떻게 표현할 지 사뭇 궁금하다.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