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의 접속/건축

[책 12] 건축가들의 20대: 건축가를 통한 건축의 이해

뚝샘 2025. 5. 4. 21:50

책이름: 건축가의 20대

엮은이: 도쿄 대학 공학부 건축학과 안도 다다오 연구실
옮긴이: 신미원

펴낸곳: 눌와
펴낸때: 2008. 6.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축물에 대한 책을 읽어보니 여러 건축가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들을 잘 알지 못하니 그 책에 대한 내용들을 잘 흡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르코르뷔지에나 안도 다다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 데어 로에 같은 건축가의 책들을 읽어보았고, 추가로 그 이후 세대 건축가들의 책을 찾던 중 이 책을 발견하여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도쿄 대학 건축학과의 안도 다다오 교수가 해외 건축 거장들이 도쿄를 방문했을 때, 도쿄 대학에서 강연을 해줄 수 있느냐고 요청해서 이에 응한 건축가들의 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전기처럼 이들의 구체적인 삶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생각의 흐름들은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각 건축가들이 한 얘기들 중에서 인상적인 부분들을 뽑아보았다.

1.렌조 피아노

 

렌조 피아노는 이탈리아 출생으로 밀라노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리처드 로저스와 함께 작업한 퐁피두 센터로 유명해졌다. 건축가가 된 동기는 아버지가 건설업자여서 건축 분야로 왔지만 아버지와 완전 똑같은 업을 가진 것은 아니다. 좀더 창조적인 작업을 하고 싶어서 건축가가 되었다.

 

건축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도 이야기한다.

건축이란 대체 무엇인가 평소에 생각해 보곤 하는데, '건축은 빙산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눈에 보이는 부분은 아주 적습니다. 그러나 건축을 건축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물속에 잠겨 있는 부분입니다. 사회학, 인류학, 역사학, 지리학, 기상학, 과학 등이 보이지 않게 물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 감추어진 부분이 받쳐 주지 않는다면 건축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은 순수하게 학문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건축물을 보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사회학, 인류학, 수학, 과학 등의 다른 학문들을 읽으면 건축의 의미와 재미를 풍성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 강연이 대학생 대상으로 한 것이라서 특별히 20대에게 주는 메시지도 이야기한다.

20대에 소중한 것은, 아까도 말했듯이 자신만의 영역을 지켜 갈 방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정보를 모으느라 에너지를 모두 써 버리는 것은 하지 마십시오. 하루 중에 고요한 한때를 갖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첫째로 드리고 싶은 제안입니다. 밤에 잠자기 전에,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깨끗한 물 한 잔을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에 적어도 20분은 혼자 지내는 시간으로 떼어 놓으십시오.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세요.

 

하루 중 고요한 한 때를 가지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2. 장 누벨

 

장 누벨은 프랑스 출생으로 파리의 보자르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파리의 아랍세계연구소, 서울의 리움미술관을 지었다. 처음부터 건축가가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고1 때 그린 데생을 보고 미술 선생님이 칭찬을 해주셔서 그림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화가가 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반대를 하셨다. 그래서 전술을 바꾸어서 대학에서 공부도 하겠다. 그리고 건축도 하겠다고 하면서 반만 설득해서 대학과 보자르에 다 들어갔다. 그러나 두 개를 동시에 하는 것이 힘들어서 건축만 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하여 건축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보자르에서는 별로 배운 것이 없고, 선배 아틀리에에서 배운 실무가 더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3. 리카르도 레고레타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멕시코 출생으로 국제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지역주의를 낳았고, 멕시코 문화를 반영한 건축으로 유명하다. 건축가가 된 계기는 특별히 없었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금융업에 종사했는데, 이에 대한 반발이 일부 작용한 것 같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함께 다닌 멕시코 국내 여행을 틍해서 멕시코의 문화와 건축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었다.

 

대학생들에게 해주는 말은 좀 낭만적이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자신의 생각, 아이디어를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직업에는 영웅이 될 수 있는 약간의 행운이 있습니다.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건축가가 되는 것보다는 음식점을 여는 쪽이 훨씬 나을 겁니다.
여러분은 건축을 사랑해서, 그리고 건축에 매혹되어서 여기에 와 있습니다. 그러면 계속 그 길을 가십시오. 전망이 몹시 어두워 보인다 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어느 날인가 빛이 비칠 것입니다. 게다가 여러분은 운이 좋습니다. 이 대학에는 빛이 가득할 가능성이 있는데다,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자세와 능력을 가진 선생님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을 가졌으니 함께 그 길을 갑시다.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굉장히 뻔한 이야기인데, 마지막에 '함께  그 길을 갑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슴에 와닿았다. 내가 이 길을 걸어와서 나는 이만큼 성취를 했는데, 너희들도 내가 한 것처럼 하라고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선상에서 함께 가자고 하는 마음가짐이 울림이 있다. 그래서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4. 프랭크 게리

 

프랭크 게리는 캐나다 출생이지만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활동하는 건축가이다. 해체주의 건축을 추구하며,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과, 디즈니 콘서트홀 등을 지었고, 한국에는 루이비통 메종을 지었다. 가난해서 트럭운전을 하면서 야간학교를 다녔고, 여러 미술 관련 강좌 중에 도자기 수업의 선생님이 건축을 권하면서 자신의 집을 건축한 라파엘 소리아노를 소개해주었고, 그 후에 건축에 흥미를 갖게 되어 건축가가 되었다. 장 누벨도 그렇고, 프랭크 게리도 그렇고 선생님의 한마디가 인생의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는 건축가들과도 어울렸지만 예술가들과 더 많이 어울렸다.

저는 건축가들에게 예술가와의 교류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치 책을 읽는 것과 같스비다. 자신과 다른 감각을 가진 존재, 형태와 공간을 다른 방식으로 파악하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대화한다는 것은 놀랄 만한 영감의 원천입니다.
다만 예술가와 교류할 때는 우리가 그들의 영역으로 빠져 들 수도 있다는 위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리처드 세라가 아름다운 강철 작품을 만드는 모습은 아주 매혹적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업은 매우 단순해 보이고 별로 힘들어 보이지도 않으며 건물을 지을 때 생기는 복잡한 일도 없어서, 저는 가끔 우리 일도 저렇게 쉬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건축에는 많은 다른 힘들이 작용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젊을 때 다른 건축가의 작품을 보면 기가 꺾일 수 있으므로 과거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그것들은 덜 위협적이고, 두렵지 않으니까....  그리고 건축 잡지도 마찬가지로 읽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건축 잡지 아니더라도 주변 어디에서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건축에만 매몰되지 않는 그의 넓은 관심이 그의 작품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 같다.


설계에 대한 두려움도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존경스럽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직관적인 행위이며 여러분은 직관을 믿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를 안다면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설계를 할 때 저는 언제나 두렵습니다. 저는 제가 무엇을 하게 될지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일터에 가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맨 먼저 주변 청소와 정돈부터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창조적인 작업을 시작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루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을 시작하기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두려움이 우리가 하는 일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려움은 자신이 어디에 닿을지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이 일을 하며 꽤 오랜 세월을 보낸 저는 이제 그 두려움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만약 제가 어디로 가는지를 안다면 저는 멈춰 버릴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결국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충동 그리고 무엇이 가능할지 알지 못하는 두려움이야말로 건축을 하는 원동력인 것입니다.

 

 5. 이오밍 페이

 

이오밍 페이는 중국 광저우에서 출생하여 미국으로 건너가서 건축가가 되었다. 파리 르부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를 지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보자르식의 도제 교육을 받다가 MIT로 옮겼고, 다시 하버드로 옮겼다. 건축 명문 학교들을 이렇게 옮길 수 있는 실력이 대단해 보인다. 그 때에는 그게 그냥도 가능했던 건가 싶다.

 

그리고 60년대부터 89년까지 큰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설계에는 집중하지 못하다가 89년 이후에야 사무소에서 은퇴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설계를 시작했다고 한다. 회사 경영에는 전문가이지만 설계에는 초짜라서 다른 건축가가 20대에 해야 할 일을 40이 되고서야 했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6. 도미니크 페로

 

도미니크 페로는 프랑스 출생이고, 한국의 이화여대 ECC를 지었다. 처음부터 건축가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아서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엔지니어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과학 분야의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건축가가 회화와 엔지니어의 타협점이 될 것 같아 선택하게 되었다. 회화를 하고 싶었지만 타협점으로 건축을 하게 된 경우는 장 누벨과 똑같고, 르 코르뷔지에도 같은 경우이다. 이들 외에도 건축가 중에서는 이런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다.

 

건축가들의 강연을 통해서 건축가들의 삶과 생각을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이들의 건축이 좀더 친숙하게 여겨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