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3] 구마 겐고, 나의 모든 일: 비주류의 모든 일
책이름: 구마 겐고, 나의 모든 일
지은이: 구마 겐고
옮긴이: 이정환
펴낸곳: 나무생각
펴낸때: 2023.01.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의 건축 작품에 대한 책을 또 읽었다. 이 책은 구마 겐고 자신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생각과 과정을 풀어서 쓰고 사진도 많이 담겨 있어서 건축가의 의도에 훨씬 가깝게 접근할 수 있었다. 책 중에서 인상적인 부분들을 뽑아보았다.
자신의 건축관에 대한 뚜렷한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던 시절, 모더니즘의 매끈함도 싫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장식도 싫었던 시절, 그는 프랭크 게리에게서 '남루함'을 발견하고, 자신의 건축의 토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게리의 남루함도 변해가는 것을 보고 자신만의 남루함을 나무에서 발견하고 이를 발전시킨다.
'이즈의 후로고야'를 통하여 나무는 게리의 함석판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남루함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무라는 재료에 관하여 생각해 보면 내가 남루하다고 느끼는 대상의 본질이 보인다. 내 입장에서 볼 때 남루함이란 썩는 것이다. 생물은 반드시 늙고 죽고 썩는다. 생물이 생활하는 건축 역시 썩어간다.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것과 맞서는 것이 건축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나무의 남루함을 통하여 배웠다.
그리고 이 남루함은 모든 것을 직각으로 치환하는 기하학도 부정하게 된다.
그래서 '이즈의 후로고야'에서는 함석이라는 흐르르한 소재를 주역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기하학도 철저하게 무너뜨리는 시도를 했다.. 우선 직각을 철저하게 피했다. 90도 대신 78도나 103도라는, 미묘하게 일그러진 각도를 사용했다. 실제로 집은 이곳저곳이 일그러져 서서히 파괴되면서 마지막에는 거대한 쓰레기로 썩어간다. 처음부터 그 썩어가는 느낌을 노렸다. 그리고 그 일그러진 평면 위에 뒤틀림을 강조하기 위해 역시 일그러진 지붕을 얹었다. 이 일그러진 기하학은 '남루한 기하학'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담은 작품인 '이즈의 후로고야'에 대해 건축가는 이렇게 정리해서 설명한다.
나의 첫 주택 작품. 탈의실 같은 집을 원한다는 말을 듣고 '격식 있는 주택'을 비웃고 싶은 충동 때문에 온몸이 근질거렸던 나는 이상적인 의뢰인을 만났다는 생각에 '후로고야(욕실 오두막)'라는, 묘한 작품명을 붙였다. 나무와 풀을 좋아하지만 물도 좋아하는 내게 '후로고야'가 처녀작이라는 점은 상당히 상징적이다. 저비용의 한계에 도전하여 외벽은 물결무늬 함석판, 내부는 바닥과 벽 모두 파티클 보드를 이용했다. 파티클 보드는 나무를 입자 모양으로 잘게 부순 다음에 압축해서 성형한 것인데 감촉도 좋고 색깔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평당 단가도 시나합판이나 '석고보드+페인트'보다 싸다. 파티클(입자)이라는 이름이 이후 나의 건축적 방법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입자화'와 연결된다는 것도 우연이면서 필연이기도 하다.
남루함의 건축을 이야기한 이후에는 건축이라는 행위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건축은 그 자체로 죄악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이런 죄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현실에 대해 비판한다.
건축은 한계가 있는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여 한계가 있는 소중하나 토지 위에 건물을 세우는 것이니까 그 자체로 범죄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느꼈다. 일찍이 아돌프 로스는 '장식은 죄악'이라고 선언했는데, 나는 '건축은 죄악'이라고 통감했다. 그러나 오사카만국 박람회의 건축들에서는 그런 죄의식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죄의식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그 죄의식으로부터 쥐어짠 듯한 건축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러면서 이런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씻을 수 있는 건축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한 끝에 하나의 건축에서 그 단초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기로산에 전망대를 지어달라는 의뢰받았는데, 현장에 다녀온 후에 이렇게 생각을 정리한다.
도쿄로 돌아와 이런저런 고민을 한 끝에 '전망대를 지워버린다'는 제안을 떠올렸다. 우선 산 정상을 가능한 한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한다. 그 정상에 틈을 내고 지면에서 그 틈을 따라 올라가면 세토나이카이가 눈 앞에 나타나는 구조다. 눈에 보이는 것은 원래대로의 녹지대 경사면이다. 이른바 건축을 소거하고 자연을 되찾는 것이다. 이것은 건축이 저지른 죄에 대한 일종의 속죄가 될지도 모른다. 건축에 대해 내가 끌어안고 있던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되는 하나의 실마리를 발견한 것 같아서 "그래! 이 방법이 있엇어!"라는 기분에 하늘로 뛰어오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지어진 기로산 전망대에 대해서 건축가는 이렇게 정리해서 이야기한다.
건축을 소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건축화되어 '매장된 전망대'라는 뒤틀어지고 역설적인 해답을 낳았다. 나는 전망대라는 건축의 존재 형식 자체가 커다란 모순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전망대에서는 주체를 형상화할 필요가 없다. 풍경을 바라보는 주체는 소거되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전망대에서는 주체가 있는 장소 자체가 형상화되어 풍경을 파괴하고 있다. 나는 주객이 전도된 그런 현상을 비판하고 싶었다. 그것은 건축에서의 주객전도의 원점이라고 생각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천국과 지옥(1963)>도 머릿속에 있었다. 요코하마의 고지대에 사는 부잣집 아들이 유괴되고 저지대에 사는 보이지 않는 범인은 고지대를 계속 관찰한다. High는 Low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지만 High의 존재 자체가 그대로 노출되어 존재가 소거된 Low에 비하여 너무 약했다. 나는 High와 Low를 반전시키는 장치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인상적인 작품으로 카사 엄브렐러를 뽑을 수 있겠다. 건축물은 아니고 파빌리온이다.
밀라노 트리엔날레로부터 긴급 시설로 활용할 'Casa Per Tutti(모두의 집)'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카사 엄브렐러'를 디자인했다. 우산을 가지고 몸을 피하면 모두가 힘을 합쳐 집을 조립할 수 있다는 '대중 건축' 아이디어다.
버크민스터 풀러의 지오데식 돔 연구에서 힌트를 얻었다. 15개의 우산을 지퍼로 접합하는 시스템을 구조 전문가인 에지리 노리히로의 협력으로 만들었다. 15명이 가져온 우산으로 15명이 숙박을 할수 있는 돔을 만드는 것이다. 대학 시절의 은사인 우치다 요시치카 교수에게 버크민스터 풀러의 시도를 배우면서 '건축의 민주화'나 '작은 유닛의 조립'이라는 방법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우치다 교수와 풀러에게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구조적으로는 우산 천의 장력과 프레임의 압축의 균형에 의한 일종의 텐세그리티 구조로 돔을 지탱했다. 텐세그리티의 마법을 이용해 일반적인 우산의 가느다란 프레임을 그대로 구조체로 이용할 수 있었다. 텐세그리티도 풀러가 발명한 것이지만 풀러 자신의 풀러 돔에는 텐세그리티 구조는 이용되지 않고 대신 굵은 프레임으로 지지되어 있다.
건축가가 자신의 작품들에 대새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읽어보니 건축가의 생각을 알 수 있었는데, 이 건축가의 생각의 기저에는 반골 기질처럼 주류와는 다른 길을 가려는 비주류의 정서가 깔려 있는 것 같다. 남루함, 반기하학, 건축은 죄악 등의 생각에서 그런 것을 느꼈다. 그런 생각들이 다른 건축가들과는 차별화된 이 건축가만의 건축 세계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사진이 설명과 함께 있어서 작품을 이해하기 쉬웠고, 번역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고 자연스러워서 읽기 편했다. 구마 겐고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