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책 34]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작가의 일기

뚝샘 2024. 7. 13. 14:53

책이름: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곁이름: 마치 세상이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지은이: 금정연

펴낸곳: 북트리거

펴낸때: 2024.04.

 

금정연의 일기이다. 일기를 읽었던 적이 언제였더라. 어렸을 때 김영사에서 나온 '비밀일기'라는 일기를 읽은 적이 있고, 그 이후에 일기를 읽은 적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이 책이 일기인 줄도 몰랐다. 제목 보고 쓰기에 대한 책인 줄 알았다. 그래서 처음 앞 부분 읽을 때 남의 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살짝 혼란스러웠다. 특히 혼란스러운 점은 '이게 끝이야?'하는 느낌을 준 것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끝났다고 생각하는 이야기가 며칠 후에 다시 이어져서 단속적으로 이어져 가는 것을 확인했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몇 가지 흐름을 보여서 혼란스러움은 잠재울 수 있었다. 

 

이야기의 흐름은 세 가지였다. 글쓰기에 대한 것과 육아에 대한 것과 지인들과의 만남에 대한 것 등이다. 이 세 가지 이야기들이 흘러가는 양상을 따라가니 사람이 보이고, 생각이 보이고, 생활이 보여서 나와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친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일기는 다른 작가들의 일기도 인용하는데, 비슷한 시기에 다른 작가의 일기는 어떻게 적고 있는지를 보면서 자신의 일기와 병치시키면서 작가의 생각과 같은 경우, 다른 경우 등을 보여주고 있다. 읽으면서 작가들이 쓴 일기책이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인용된 작가들의 일기 속에도 글이 써지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내용이 꼭 들어가 있다. 금정연 작가의일기의 글쓰기와 관련된 것들은 죄다 오늘도 써야 하는데 못 썼다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일기책 속의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이거 작가는 누구나 다 숙명처럼 안고 가는 딜레마인 것 같다. 또 한가지..... 작가들의 많은 읽기 가운데 관련된 일기를 찾아서 해당 일기에다 넣는 것도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작가들의 일기를 보고, 자기도 그런 내용을 쓴 건지, 자기가 그런 내용으로 일기를 썼는데, 작가들도 그런 내용을 쓴 것이 있었던 것인지, 앞뒤 관계가 궁금하기도 하다.

 

일기 중에서 인상적인 일기는 자신의 생일날 쓴 일기이다. 생일이 같은 중학교 친구한테 연락이 와서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서면 인터뷰를 작성하고, 딸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인터넷에서 자신의 책에 대한 부정적인 서평을 읽고, 오후에 딸이 아프다고 연락와서 병원에 가고, 애가 좀 나아져서 생일 케잌도 먹고, 아내와 샴페인이라도 하려고 했으나 아이 재우면서 아내도 같이 자고..... 혼자 밤에 다른 작가들의 일기를 보면서 다른 작가들은 생일날 어떻게 일기를 썼는지를 보고..... 생일이 아니었으면 조금 왁자하면서도 평범했을 하루가 생일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니 약간 감성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재미있는 일기는 소설가 친구 대신 시상식에 참석한 날의 일기이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매체의 시상식은 화려하면서도 어색하지 않은데, 문학상 시상식은 그야말로 행사같다. 친구의 부탁이니 어렵지 않게 수락했다. '시상식에 간다-상을 받는다-집에 온다' 이 세 가지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는 과정부터가 난관이었다.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가 처가에 다시 데려다 주고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고.... 도착했더니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 선생님들이라서 편하게 말 걸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어색하고.... 수상 소감을 이야기할 때는 수상 소감문이라고 써준 내용이 너무 길고, 자신도 모르는 내용이 범벅이라서 읽고 싶지도 않은데, 안 읽을 수도 없고..... 뒷풀이라고 갔는데 자리 배치 잘못 하면 이상할 것 같아 눈치 보고..... 다행히 동행한 사람들과 같이 있을 수 있어서 그 때부터는 괜찮았다는 이야기..... 지은이의 상황이 눈에 보여서 재미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도 일기에 나오는데, 인상적인 내용은 책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이가 크면서 안 읽는 책을 버리려고 했는데, 아이는 징검다리 만들 때 써야 한다고 못 버리게 한다. 그리고 아이는 온 집안에 책을 깔아서 징검다리를 만들어서 엄마 아빠도 책을 밟고 다니게 한다. 그 책을 같이 밟으면서 생각한다.

문득 이것이 바로 책의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 험한 세상의 징검다리가 되어 주는 것 말이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번뜩이는 사유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아이와 나누는 부분은 이기호의 책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와 비슷한 느낌도 주었다. 아이의 순진무구함과 그것을 바라보고 미소를 짓는 아빠의 풍경.....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일기는 브라이언 딜런의 '에세이즘'이라는 책을 인용하는 일기인데, 인용한 책의 작가인 브라이언 딜런도 손택의 일기를 인용하는 부분이 나온다. 결국 일기를 쓰는 작가의 일기 속에 일기를 쓰는 작가의 이야기가 있고, 그 작가의 이야기 속에 또다른 작가의 일기가 있는 형국이다. 그러면서 내용도 작가로서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 일기를 쓴다는 것이 자기에게 위안이 된다는 얘기를 세 작가가 모두 하고 있다. 작가들이 일기를 쓰고,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무겁지 않아서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