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36] 총통각하: SF로 풍자하기
책이름: 총통각하
지은이: 배명훈
펴낸곳: 북하우스
펴낸때: 2012.10.
배명훈의 소설집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 창작된 작품들인데, 당시 정권의 통치 행위에 많은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 작품들은 결국 당시 정권에 대한 풍자가 많이 들어가 있다. 제목이나 작품 내에 등장하는 총통도 결국 이명박 대통령을 뜻하는 것일테고......
「바이센테니얼 첸슬러」는 총통이 당선되자 임기 동안 살아가는 것이 힘들 것 같다면서 동면을 하는 부부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동면을 연구하는 아내의 제안으로 시작했지만 동면에서 깨고 나니 총통이 개헌을 해서 연임을 하고 있었고, 부부가 또 같이 동면을 해서 깨어났는데, 총통은 불로초를 만들어서 계속 정권을 이어갔고, 부부는 동면을 더 길게 하고 깨어났더니 인간은 없고, 로봇들이 맞아주었다. 총통과 사람들은 화성으로 이주했고, 이들은 총통없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 정권이 통치하는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혁명이 끝났다고?」는 대학 시절 저항운동을 하던 선배를 다시 만난 이야기이다. 선배는 결혼도 안 할 것처럼 하더니 결혼하고 애 낳고 살고 있었고, 오늘 만남에서는 애도 함께 데리고 왔다. 이런 저런 근황을 이야기하면서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에 허탈함을 느끼는데, 그것보다 더 분노하는 것은 회전초밥집에서 돈도 없는데 선배의 아들이 비싼 초밥을 마구 먹는 모습을 참지 못하고, "그만 처먹어, 이 돼지야!"하고 소리친 이야기이다. 첫사랑이고, 추억이고 다 필요없고, 지금 현실의 궁핍이 더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초록연필」은 사무실에 우연히 들어온 명품 연필의 정체를 알아챈 두 사람이 명품 연필의 행방을 찾는 이야기이다. 연필을 찾기 위해 플러스펜으로 모의 실험을 하고, 실험의 결과 도출한 연필의 행방을 찾는 부분까지는 흥미 진진하고 긴장감 있다. 과연 누구의 손에 연필이 들어갔을까? 그는 왜 그 연필을 가져갔을까? 연필의 가치를 알고 있었을까? 등 궁금한 점이 많아서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연필 장인이 연필을 만들게 된 내력이 두번째 트랙으로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확장되는데, 연필 장인의 이야기는 연필들이 모여서 지구의 핵폭탄을 작용시켜 지구를 멸망시킨다는 내용이라서 기대를 너무 많이 넘어선 느낌이었다. 허무함도 많이 넘어섰다. 그냥 두 직원이 연필의 행방을 찾는 것에서 짜임새 있게 마무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년」은 미래의 어느 시기에 동면에서 깬 나는 2012년을 그대로 재현한 박물관에서 일하게 된다. 주된 업무는 재현된 2012년을 살아가면서 현실을 모니터링하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다 2029년에서 왔다는 예언자를 만나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2012년을 2013년으로 넘기는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방법은 지금의 시기에 있는 로봇을 조종해서 2012년 박물관에 가는 것이다. 그러면 2012년의 사람들은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변화를 요구하면, 시간의 균열이 생격 2013년으로 넘어간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렇게 실행을 하지만, 내년은 오지 않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2012년은 지속적으로 비가 온다거나 찬드라무키라는 예언자가 사실은 2012년 언저리의 인도 영화 속 인물이라거나 하는 등의 작가가 숨겨놓은 알레고리들이 있지만 연결이 깔끔하게 되지는 않는다. 다시 읽으면서 분석하고 싶기는 한데, 좀 귀찮다. 아무튼 머리를 많이 쓰게 만드는 작품이다.
「charge!」은 인물들의 비장함이 멋있는 작품이다. 후계자 세력과 후계자를 인정하지 않는 쿠데타 세력과의 결전, 그리고 그 사이에 선 용병들의 용맹함을 다룬 작품이다. 후계자 세력은 결전을 할수록 무너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런 모습을 보고서 용병들이 합류하지만 결국에는 후계자와 용병 모두 전사하는 이야기이다. 패배할 줄 알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전사의 비장함이 압권이다.
연작소설이라고 표지에는 되어 있지만 총통이 등장한다는 것과 때때로 악마가 등장한다는 것이 나름 공통적인 요소일 뿐이고, 내적으로 긴밀성은 떨어진다. 그냥 개별 작품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