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의 접속/문학

[책 15] 겨울방학: 자세히 보면 보이는 별빛 같은...

뚝샘 2022. 6. 7. 14:32

책이름: 겨울방학

지은이: 최진영

펴낸곳: 민음사

펴낸때: 2019.10.

 

최진영의 단편소설집이다. 이 중 몇 작품은 다른 작품집이나 다른 매체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인상적이니 작품들 몇 개를 뽑아보았다.

 

「겨울방학」은 임신한 엄마가 동생을 낳기 위해서 초등학생인 첫째 이나를 겨울방학 동안 혼자 사는 고모의 집에 보내는 이야기이다. 풍족한 아파트에서 여유있게 살던 이나가 원룸의 빌라에서 미니멀하게 사는 고모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빈부 격차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 묻고 있다. 그리고 고모는 이나를 위해서 함께 피아노를 배우고, 직업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심지어 한 달 동안 일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조카를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했다. 그것을 이나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고모는 조카가 자신과 함께 있는 동안 가난만을 배웠을까봐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아이의 시선에서 본 가난의 모습이 더 아프게 다가온 작품이다. 

 

「첫사랑」은 고등학교 남학생의 여학생에 대한 짝사랑으로 시작해서, 그 짝사랑의 대상이 되는 여학생이 학교 여자 선배와 사랑의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로 끝난다. 여사친 남사친으로 지내던 두 학생은 남학생의 생일날 남학생이 고백을 하고, 여학생은 거절한다. 그리고 시점이 바뀌어 여학생의 시점에서 자신은 그 남학생의 집에서 그 남학생의 누나가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 선배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마음을 키워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고백이 들어오니 거절할 수밖에.... 이처럼 엇갈리는 사랑의 이야기를 그리다가, 여학생이 여선배와 학교에서 자주 만나고 마음을 나누지만 동성애를 드러낼 수 없어서 안타까워 하는 이야기이다. 원작은 웹진에서 발표했었는데, 그 때에는 남학생의 여학생의 팬티를 벗겨 가져가는 장면이 소설집에서는 팔찌를 가져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수위를 조절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풋풋하면서도 안타까운 사랑의 감정이 섬세하게 잘 그려졌다. 

 

「막차」는 야근으로 늘 막차를 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막차는 난폭하게 질주하고, 무엇인가를 친 것 같지만 아무도 그것을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두 남자가 이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기사에게 말을 걸지 못한다. 그리고 난폭운전으로 한 남자가 버스에서 쓰러지고, 지폐를 흘리는데 돈에는 몇 년 전 사고의 목격자를 찾는다는 문구가 써있었다. 그리고 승지는 이 길에서 사고로 죽은 동생 영지를 생각하며 죄책감에 휩싸인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고, 처음부터 유가족임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정보를 풀어내면서 마지막에 죽은 동생 영지의 존재를 언급하면서 독자에게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어느 날(feat 돌멩이」는 미 대륙만한 돌덩이가 지구와 충돌하기 직전에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비슷한 이야기로 김미월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있었는데, 이 작품도 비슷하다. 나는 일시불로 결제한 카드값을 할부로 바꾸려고 반복해서 카드사 콜센터를 연결하지만 콜센터에서는 처리를 했는데도 알 수 없는 오류가 처리가 안 된다고 한다. 내일이면 지구가 멸망하는데 다음 달 카드값이 일시불이 되든, 할부로 되든 무슨 소용일까 싶다. 하지만 혹시나 멸망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바람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구차하게 매달리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반복해서 매달리는 사람이 있는데, 나의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왜 지구에 그런 돌멩이가 떨어지고, 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지 등 도무지 설명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나에게 반복해서 묻는다. 그러면서 나는 어머니의 생각을 이해하고,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고, 어머니와 마지막을 함께 할 것을 다짐하고 소설은 마무리된다. 지구 멸망의 날을 앞두고도 우리는 여전히 삶의 여운을 떨치지 못하고 끝까지 매달리는 모습이 인간적이다.

 

「오늘의 커피」는 다리가 불편한 주인공이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까지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사기로 사람들에게 쫓겨다니고, 어머니는 아버지 뒤치다거리를 하다 요양원에 들어가셨지만 결국 자살을 한다. 다리가 불편해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제한적이지만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는 제법 경력을 쌓은 주인공은 숙식 제공이라는 조건에 기대를 걸고 아르바이트 장소로 간다. 가는 길을 물었지만 버스가 유턴하면 내려서 건너편으로 30분 들어오면 된다고 한다. 이런 막연한 설명은 영화 《안경》에서도 나온 것 같은데, 이후의 카페 분위기가 이 영화와 비슷하다. 도착한 카페는 하루에  한 명이 있을까 말까인데 24시간 운영을 하면서 주인과 아르바이트생 2명이 8시간씩 3교대로 일한다. 아르바이트생들의 월급은? 주인이 카페 옆의 논밭에서 농사를 지어서 번 돈으로 준다. 이거 뭐가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인데 주인은 도대체 왜 이러는걸까? 주인은 어떤 사람한테 약속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그래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고용해서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이 작품 기다림에 대한 끝판왕 같은 소설이다. 커피처럼 따뜻하다.

 

작품들이 묵직하거나 깊이 있게 울리지는 않지만 잔잔하면서도 조금만 관심 있게 보면 작가가 숨겨놓은 보석들이 별빛처럼 빛나는 작품들이 있는 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