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의 접속/문학

[책 1]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미래와 현재의 교집합

뚝샘 2022. 1. 28. 21:41

책이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은이: 김초엽

펴낸곳: 허블

펴낸때: 2019. 06.

 

미래에 대한 과학 소설집인데,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적당히 동떨어진 현실과 교집합이 있어서 생각할 것들이 제법 있는 소설집이다. 

 

「스펙트럼」은 우주에서 실종되었다가 어느 별에서 지능을 가진 외계 생명체를 만난 여자 과학자의 이야기이다. 거기서 그들은 그림의 색체로 의사소통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인간의 감각, 언어, 사상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공생가설」은 역시 외계 생명체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의 DNA에 함께 살아가다가 어린이가 되면 사라진다는 얘기인데, 우리가 어릴 때의 기억을 잘 생각해내지 못하는 현상을 소재로 담은 소설이다. 루디밀라라는 러시아의 소녀는 아주 환상적인 그림으로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는데, 루디밀라는 그 그림의 풍경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했고, 우주 과학자들은 어떤 행성의 데이터가 루디밀라의 데이터와 일치한다고 발표한다. 한편 서울의 한 연구소에서는 어린 아이들의 뇌파를 분석해서 생각을 언어로 바꾸는 연구에서 어린 아이들이 아주 높은 지능과 높은 도덕성을 가진 존재처럼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발견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를 연구하면서 외계 생명체가 우리의 DNA에 들어왔다가 뇌에 살다가 사랑, 윤리, 이타심 등을 가르치고, 7살이 될 때 즈음에 떠난다는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 루디밀라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던 이유는 그 때에 대한 그리움 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를 왜 다 기억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은 가끔 했었는데, 그 내용으로 이런 소설을 쓴다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다른 우주에 가족을 두고 온 과학자의 이야기이다. 과학자는 냉동 수면 기술을 개발한 사람이다. 가족들은 새로 개척한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먼저 보내놓고 연구가 끝나면 나중에 따라 가려고 했다. 그런데, 우주의 지름길과 같은 웜홀 항법이 개발되면서 기존의 워프 항법으로 갈 수 있었던 슬렌포니아 행성의 가치가 떨어지고, 거기로 가는 우주선이 끊기게 되어 가지 못하게 된다. 그래도 과학자는 우주 정거장에서 가끔씩 오는 비정기적인 우주선으로 슬렌포니아 행성을 가는 것을 알고, 언제 올 지도 모르는, 어쩌면 안 올 지도 모르는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한다.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다.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거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진다면......"

잊혀진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감성의 물성」은 감정을 담은 물체를 구입하는 이야기이다. 가령 행복, 침착, 공포, 우울과 같은 감정을 손에 잡히는 물체로 만들어서 갖게 되면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긍정적인 감정도 사지만, 우울, 공포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판다. 업체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안 만들면 될 것도 같은데.... 이 부분에서 주인공은 업체 사장을 우연히 만나 이에 대해서 묻는다.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죠.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

이에 대해 주인공은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인데, 의미를 배제한 감정을 소비하는 것은 불합리적이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파영화를 보며 눈물을 짓는 행위를 보면 영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눈물 짓는 그 행위가 더 중요했음도 생각한다. 의미 맥락은 필요없이..... 

 

그리고 이런 것을 사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서 후배는 이렇게 얘기한다.

선배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제 생각은 이래요.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잡아요. 왜, 보면 콘서트에 다녀온 티켓을 오랫동안 보관해두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사진도 굳이 인화해서 직접 걸어두고 휴대폰 사진이 아무리 잘 나와도 누군가는 아직 폴라로이드를 찾아요. 전자책 시장이 성장한다고 해도 여전히 종이책이 더 많이 팔리고, 음악은 스트리밍으로 듣지만 음반이나 LP도 꾸준히 사는 사람들이 있죠.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이미지를 향수로 만들어서 파는 그런 가게도 있고요. 근데 막상 사면 아까워서 한 번도 안 뿌려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 후배의 얘기를 들으니 정말 우리는 물건에 의미와 감성을 부여하여 그것들이 주는 느낌들을 갖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런 감정을 일으키는 물건이 있다면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눈 앞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울감에 빠져 헤어진 연인인 보현에 대한 이해를 하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진다.

잠시 머물렀다 사라져버린 향수의 냄새. 무겁게 가라앉는 공기.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흐느끼는 소리. 오래된 벽지의 얼룩. 탁자의 뒤틀린 나뭇결. 현관문의 차가진 질감. 바닥을 구르다 멈춰버린 푸른색의 자갈. 그리고 다시, 정적. 
물성은 어떻게 사람을 사로잡는가.

마지막 부분에 작가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들로 가져감으로써 느낌은 오는데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여성이다. 그렇다고 젠더 이슈와 연관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고, 미래의 사회에서는 여성들의 역할이 더 많은 부분에서 있을 것이라는 것을, 현재의 상황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과 의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민이 미래 사회에 대한 상상력과 잘 어울어져 재미를 주는 소설인 것 같다.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