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의 접속/문학

[책 45] 폭식: 내가 접해보지 않았던 관점으로 세상 보기

뚝샘 2021. 8. 14. 19:52

책이름: 폭식

지은이: 김재영

펴낸곳: 창비

펴낸때: 2009.12.

 

김재영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코끼리」라는 작품으로 처음 알았고, 꾸준하게 여러나라들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창작했다고 들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던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꽃가마배」는 장애로 불구가 된 아버지를 돌보기가 힘들어지자 고모는 동남아 여자를 데려와 결혼시킨다. 단순히 돌보는 것만을 요구했지만 아버지와 여자는 사랑을 하고, 애도 갖는다. 고모와 나는 그런 여자를 미워하고 의심한다. 그러다 아버지가 죽자 여자는 아이를 친정인 태국으로 보내고 여수의 공장으로 떠난다. 그 후 여자는 공장의 화재로 불타죽고,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나는 태국으로 간다. 

 

소설은 태국으로 가는 과정 속에서 중간중간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전개되어 약간의 머리를 써야 한다. 그리고 나는 미국 남자친구 마이클과 사귀는데, 마이클은 미국으로 가면서 연락을 준다고 하지만 연락이 없다. 이는 내가 태국 여자를 멸시하는 것과 마이클이 나를 멸시하는 것이 동일시되어 국가간의 힘이 그 국민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 여자의 고향에 도착한 나는 역 앞에 나와 있는 이복동생 수동을 만나 웃으면서 소설이 마무리되는데, 이는 앞부분의 모든 갈등이 해소되며 인간의 관계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앵초」는 9.11 테러로 남편인 민욱을 잃었고, 빨치산 아버지를 둔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모시는 하윤의 이야기, 하윤의 남편의 대학 친구로서 남미에서 세계시민단체 회의를 마치고 뉴욕에 경유할 때 하윤을 만나기 위해 들른 우창의 이야기, 하윤의 아들로서 한국인이라기보다는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시민권을 거부한 어머니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보람의 이야기, 그리고 유령으로서 하윤의 집에 들른 우창과 보람과 장모님을 흐뭇하면서도 자신이 같이 할 수 없음에 씁쓸함을 느끼는 민욱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에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하윤과 우창이 조심스럽게 서로의 마음을 나누지만 끝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그려져 있다. 

 

「롱아일랜드의 꽃게잡이」는 출판사에서 해외 저작권 계약 담당 직원으로 뉴욕에서 일하는 수의 이야기와 뉴욕에서 네일아트를 하는 사브리나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펼쳐지는 소설이다. 수는 십 여년전 아내와 사별하고, 유부녀였던 지희와 사랑을 나누지만 이루어지지 못하고, 하나 밖에 없는 딸과 지내고 있다. 어려서 아버지는 교사였지만 북한을 긍정적으로 말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갔고, 5.18 때 광주에서 시민군이었다가 미국으로 밀항한 삼촌의 존재로 옥고를 치렀다. 엄마는 나에게 아빠는 미국에 갔다고 얘기했고, 삼촌은 미국에서 가끔씩 초콜릿이나 학용품을 보내주었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면서 우리 아빠가 정말로 미국에 갔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쪽 에이전씨로 나선 사람이 한국인이었는데, 자신의 아버지를 잡아간 형사의 아들이었다. 

 

싸브리나는 뉴욕에서 네일아트를 하고 있다. 11살에 이민을 왔고, 아버지는 밑바닥일부터 시작해서 생계를 꾸렸다. 그러던 어느날 훈이삼촌이라는 낯선 청년을 데려와서 다락방에 지내게 했고, 그를 찾아온 사람들과 모임을 했고, 한국을 돕기 위한 일을 했다. 그러다 그 청년은 다시 떠났고, 롱아일랜드의 모래톱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수는 싸브리나를 찾아와 훈이삼촌을 아느냐고 물었고, 이후에 수가 유학생 환송파티에 싸브리나를 초대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훈이삼촌은 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과 함께 지내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는데, 그 중에는 순이에 대해서도 얘기했고, 함께 찍은 사진도 보냈었다. 그 순이가 바로 싸브리나였다. 결국 이 둘은 훈이삼촌을 추억하며 롱아일랜드로 함께 가기로 약속을 했고, 수는 지하철을 타고 약속장소로 가고 있었는데, 무슨 사고인지 지하철이 멈췄고, 수는 무작정 거리로 나왔는데, 거리는 아수라장이었다. 혼란스러운 사람들 틈에서 수는 싸브리나와 통화하던 핸드폰을 놓친다. 한편 싸브리나는 수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불안하던 차에 간신히 통화가 연결되었으나 혼란스러운 소음만 들리는 가운데에서 비명과 굉음이 들린다. 그리고 소설은 끝난다.

 

이국 땅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할지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테러와 같은 위협적인 상황 속에서 무엇도 안정적으로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게 그려지고 있다. 

 

「십오만원 프로젝트」는 고시생인 나는 홀아비 장인어른을 모시고 살고 있다. 아내는 간호조무사로 일하다 성희롱에 반항하다 그만 두고, 학습지 교사를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족한 가운데 장인어른을 기분좋게 하는 비법을 발휘한다. 일만원 프로젝트는 사우나 가서 안마하고, 때 밀어드리는 것, 십오만원 프로젝트는 장인어른과 친구분들을 차를 몰고 근처 유적지나 유흥지에 가서 하루 놀아드리는 것. 그런데 그게 그 돈으로 가능한가 싶지만, 저렴한 입장료와 사우나 할인권, 백숙과 같은 국물 많은 음식 등으로 조합을 하면 어느 정도 수지를 맞출 수 있고, 무엇보다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약장수 못지 않은 말빨로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이다. 이런 유쾌한 이야기가 끝까지 가면 좋겠지만 마지막 장면에는 운전 중 파리가 시야를 가려서 위태롭게 중앙선을 침범하면서 질주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사고가 났다는 것인지 다행스럽게 잘 갔다는 것인지 독자에게 맡겼지만 이처럼 주인공의 삶고 한순간 한순간이 위태로움을 나타내고 있어서 마지막이 안타까웠다.

 

작품들이 모두 내적인 구성이 치밀하고, 적절하게 내용을 숨겨서 상상하며 읽는 맛이 있었고, 내가 접해보지 않은 삶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넓힐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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