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22] 사람은 왜 서로 싸울까: 싸움은 이성의 문제
책이름: 사람은 왜 서로 싸울까
지은이: 차병직
펴낸곳: 낮은산
펴낸때: 2015.08.
사람들은 싸운다. 나를 화나게 하거나 이익을 얻기 위해, 혹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혹은 신념을 위해.... 여러 가지 이유로 싸운다.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그쳤던 화두를 좀 더 깊이 있는 사고와 언어로 풀어낸 책이다. 내용의 깊이가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다.
1장은 '싸움은 어디서 시작되는가'라고 되어 있다. 싸움의 원인을 얘기하는데, 그 전에 싸움과 평화 중 어느 것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를 구분해본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싸움을 비정상, 평화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희망사항이고, 실제로 벌어지는 빈도수를 따져보면 싸움은 정상이고, 평화는 비정상이다. 평화를 누린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싸움과 싸움 사이의 일시적인 공백일 뿐이다. 평화가 정상이고, 싸움이 비정상이라고 말하려면 싸움의 가능성조차 없이 안정된 상태가 대부분이고, 어쩌다가 기이하게 싸움이 일어나는 정도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싸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싸움의 원인을 찾을 때 가장 밑바닥에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 상대방의 공격을 받으면 몸과 마음을 다치고, 무엇인가를 잃게 되고, 정상적으로 생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먼저 싸움을 걸기도 한다. 그럼 일상 생활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일까? 지은이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욕심, 배신, 지루함, 정의감 등을 언급하고, 환경적 차원에서는 평등(불평등)이 싸움의 원인이 된다.
2장은 '싸워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이다. 싸움은 대부분 감정과 연결되어 있어서 싸워서 무엇을 얻으려는지에 대해서 생각은 거의 안 하는데 현명하게 싸우려면, 혹은 싸우지 않으려면 이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싸워서 이기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싸우는 것이고, 싸워서 이익을 얻는 것이 정당하다면 역시 싸우는데, 이런 것들이 합법적이고, 정당하면 그것을 경쟁이라고 부른다. 이외의 다른 개인적인 싸움은 사실 정당하지 않아서 옳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이 때에는 정당성을 따져야 하는데, 서로 맞서는 양측은 모두 자신들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서로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새로운 근거들을 찾고 만들어서 정당하게 만든다. 그러니 싸움의 결론은 나지 않고 서로 원하는 것을 얻기는 힘들다.
3장은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있다면'이다. 피할 수 없는 싸움으로 먼저 부당한 행위에 대해, 권리의 침해에 대해 분노하는 것, 그리고 진실을 위해 싸우는 것, 차별을 없애기 위한 싸우는 것은 정당하고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피할 수 없는 싸움을 통해서 사회는 변화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꼭 싸워서 변화시켜야 하는가, 타협과 양보로도 변화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지은이는 의도성을 얘기한다.
의사와 관계없이 저절로 찾아오는 변화는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할퀴지 않는다. 눈이 녹은 뒤 피는 꽃처럼 나타난다. 하지만 싸움을 통해 맞는 변화는 다르다. 그것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싸움의 과정에서 몸과 마음은 상처를 주고 또 받는다. 그 격렬한 충돌은 우리의 정신과 육체에 역사를 기록하듯 흔적을 남긴다. 싸움의 궤적이 바로 삶의 일부이며, 싸움이 이룬 변화의 결과에 대한 설명이 된다. 왜 그렇게 되었어야만 했는가를 말해 주는 것이다. 약병에 복용법이 적혀 있고 식품 포장지에 성분 표시가 되어 있듯이, 보이지 않는 그 기록은 변화에 대한 우리 생활의 적응 방법으로 기능한다.
4장은 '잘 싸우는 방법을 찾아서'에서는 의도와 행위의 정당성을 갖춰야 인정받을 수 있는 싸움이라고 말하는데, 이 중 행위의 정당성을 얘기하기 위한 전제로 완벽한 승리는 없다고 말한다. 보통 싸움을 시작하면 어떻게든 이기려고 하다보니 애초의 목적은 뒤로 빠지고 승리에만 집착하게 되어, 폭력으로 연결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폭력을 가하면 상대방에게 두려움과 굴욕감을 주어 완벽한 승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명하게 싸움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폭력은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폭력에 의한 승리는 완벽한 승리도 아니다.
아무튼 목적을 갖고 하는 싸움이 끝나면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데, 이 때 승자와 패자의 태도가 중요하다. 싸움의 목적은 갈등의 해소이므로 승자가 패자를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는 또다른 복수를 부르기 때문에 갈등이 해소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승자의 관용과 패자의 자존이다.
승자는 항상 자기가 옳거나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서 이겼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승자에게는 겸손과 절제와 관용이 필요하다. 패자는 통한에 빠져서는 안 된다. 진 것은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운을 비롯한 다른 요인들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졌기 때문에 상대방이 이기지 않았는가. 둘 모두 패배하는 것보다 자기가 패자가 됨으로써 승자 한 사람을 만들어 냈다고 자위하는 당당한 태도가 필요하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니까. 패자에게는 자존이 필요하다.
싸움에서 이기면 그 사람의 주장은 옳은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옳은 것이 항상 이기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겼다고 그것이 다 옳은 것도 아니다.
옳고 그름은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결정해 나아가는 목표다. 옳은 것, 선한 것, 정의로운 것은 신이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결정해 가는 과정에 필요한 것은 우리 각자의 지식, 의지, 감정 같은 요소들이다. 결국 개인의 공부와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에 지은이는 싸움에 대한 결론을 명쾌하게 내리고 있다.
사람의 싸움은 어리석은 짓이지만, 어차피 싸울 수밖에 없다면 싸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싸움에 대한 고민이 우리의 어리석음을 감소시켜 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럴 때 싸움은 욕망을 조절해 주는 수단이 되고, 소통의 절실함을 깨닫게 하고, 생각을 진지하고 단단한 사유의 흔적으로 남게 할 수 있다.
싸움에 대해서 우리가 언제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을 했을까 싶다. 그리고 싸움은 감정과 연결되어 있지만 마무리는 이성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성이 이렇게 잘 통제되면 싸움은 별로 일어날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