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의 접속/문학

[책 11] 28: 인간과 동물, 그리고 인간

뚝샘 2020. 8. 7. 21:26

책이름: 28

지은이: 정유정

펴낸곳: 은행나무

펴낸때: 2013.6

 

1. 읽게 된 동기

 

지난 주에 정유정 작가의 인터뷰집을 읽으면서 작품을 쓸 때에 작가가 어떻게 쓰는지 대략적으로 알게 되었고, 그 때 플롯에 대한 설명으로 하면서 작가가 예로 든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었다. 작가가 이런 작업 과정과 이런 생각을 하고 쓴 작품은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궁금하기도 했고, 6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시점에서 사건을 접하고 이를 하나의 주제로 통합하는 플롯을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2. 인물들

 

한기준은 119 구조대원이다. 링고가 개장수 집에서 탈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전염병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구조 임무를 다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와 딸은 전염병과 개들의 습격으로 죽게 된다. 노수진의 부탁으로 노수진의 아버지와 동생의 소식도 찾아봐주지만 나쁜 소식만 전하게 되고, 노수진도 지키지 못한다. 자신의 가족이 개에 의해 죽게 되자 개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스타를 죽이게 되고, 링고의 원한을 사게 된다. 절정 부분의 링고와의 대결 에서 서재형, 김윤주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

 

서재형은 동물병원 수의사이다. 11년전 알래스카 개썰매 대회에서 화이트아웃에 갇히고 회색 늑대의 습격으로 죽을 뻔 하지만 썰매개들을 희생시켜서 생존했다는 죄책감으로 살아간다. 휴먼다큐멘타리에 출연으로 많은 후원을 받지만 김윤주의 비판적인 기사로 나락에 떨어진다. 이후 전염병이 개와 사람에게서도 전염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개들이 살처분될 것을 예상하고 이를 대비하려고 하지만 군에 의해 개들을 모두 잃는다. 고아가 된 앞 못 보는 소녀 승아를 보호하기 위해 갈 곳 없는 기자 김윤주의 도움을 받는다. 쿠키를 전염병으로 잃고 스타가 링고를 따라 가고, 스타도 매립지에서 목숨을 잃자 링고를 좇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절정 부분에서 링고에게 공격받는 한기준을 구하고 죽게 된다. 중간에 김윤주의 짧은 로맨스도 있다.

 

김윤주 한진일보 기자이다. 박동해로부터 받은 투고를 바탕으로 서재형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쓰고, 후속 취재를 위해 서재형을 찾아가고, 그를 접하면서 서재형의 진심을 알게 되고 사랑도 나누게 된다. 박주환 형사와 함께 링고를 좇는 서재형을 찾아다니다 절정 부분에서 한기준을 구하는 서재형을 발견하지만 서재형을 구하지는 못한다.

 

박동해 공익요원이다. 어려서 잘난 부모, 잘난 형과 여동생 사이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아버지가 기르던 쿠키를 죽이려 한다. 아버지가 강제로 군에 입대시킨 후에도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에 대한 복수로 상사가 기르던 부대 개들을 잔인하게 죽이자 공익요원으로 재배치된다. 근무지를 무단으로 이탈하여 쿠키를 다시 죽이려 하지만 스타를 잘못 데려오고, 스타를 구하려던 링고에게 공격을 당하고 친구 진만이 죽게 된다. 이 일로 아버지가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지만 정신병원에 방화를 하고 탈출하여 다시 서재형의 드림랜드에 방화한 후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위해 자신이 살던 집에 방화를 하면서 어머니도 죽인다. 자신을 죽이려는 아버지를 찾아 죽이려 하지만 스타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링고에 의해 죽게 된다. 아버지는 자살한다. 가장 악하고 잔인한 싸이코패스적인 인물이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노수진은 병원 응급실 간호사이다. 전염병을 최초로 발견했고, 화양체육관이 통합병원으로 되자 차출되어 업무를 수행한다. 중간에 아버지에 대한 걱정으로 귀가하다 한기준의 아내와 아이가 개들에게 습격당하는 것을 발견하고 병원에 데려오지만 살리지는 못한다. 주변 동료들이 하나둘 죽어나가자 결국 집으로 귀가하고, 혼자 집에 있다 괴한들에게 윤간당하고 한기준의 도움으로 한기준의 집에서 기거하다 어머니에 대한 환상을 보고 밖으로 나가 헤매다 남부봉쇄선에서 계엄군에게 사살당한다.

 

링고는 개다. 개장수의 집에서 탈출하여 산을 헤매다 스타를 만나고 행복을 느끼다 개들이 살처분되는 현장을 보고 개들을 구하려 하지만 구하지는 못한다. 박동해가 스타를 납치해 죽이려 하자 스타를 구하고 박동해 친구 진만을 벼랑으로 내몰아 죽인다. 이후 스타를 죽이려 한 박동해 집에서 기다려서 그를 죽이고 크게 다친다. 서재형의 도움으로 살아나지만 한기준에 의해 스타가 죽자 한기준에 대한 복수를 위해 소방서 근처에서 기다리다 그를 발견하고 좇아 절정 부분에서 그와 대결하지만 서재형과 김윤주에 의해 죽게 된다. 인간이 아니라 개이지만 동등한 인물의 자격으로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한다. 작가가 인간과 동물, 자연을 차별하지 않고 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6명의 주인공 중에서 기준과 윤주만 살아남고, 나머지 4명은 다 죽는다. 그리고 주인공이 사랑하는 주변 인물들도 거의 모두 죽는다. . 작가가 그리는 인물들에 몰입해서 긴장하면서 읽을 때 이 사람은 안 죽었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그 바람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재앙 리얼리티의 끝판왕이다. 가차 없다. 실제로 그럴 것 같다. 재앙이 우리를 피해가길 바라지만 그것이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작가 인터뷰에서 본 것처럼 인물들은 모두 욕망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채 바꿔버릴 사건 속에 빠져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충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3. 구성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구성이다. 이 책을 읽은 동기이기도 하고. 각 장마다 6명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넣고, 총 6장과 에필로그에 걸쳐 전개시킨다. 새로운 장으로 넘어갈 때마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새롭게 전개되는데,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하느라 경과된 시간의 공백은 기억과 회상으로 채워넣는다. 이 때 이야기를 다시 맞춰 나가는 재미가 있다. 작가는 이 퍼즐이 흐트러지거나 모순되지 않고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서 무수한 수정과 플롯 재배치를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인물의 이야기에서 꿈과 환상의 교묘한 결합으로 몽환적 장면이나 막연한 상황을 제시하고 이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게 만든 다음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 그 꿈과 환상이 어떤 사건인지 명확하게 한다. 예를 들면 수진이 꿈인지 환상에서 죽은 어머니를 보게 되고, 멀어지는 어머니를 잡기 위해 따라 가고, 어느 순간 사람들 헤치고 나아가고 넓은 개활지가 나오고 붉은 하늘 저편에서 총소리가 울리는 장면이 수진의 마지막 장면이다. 다음 장 기준의 이야기에서 기준은 젊은 여자가 봉쇄선을 넘다가 사살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으로 향한 후 죽어있지만 꿈을 꾸는 듯한 편한 표정의 수진을 발견한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따로따로이지만 각 인물들 간의 만남과 헤어짐, 스쳐감이 있어서 이를 인물 관계도로 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사건의 장소들이 화양시 안에서만 벌어지는 것이라서 이동 경로에 따라서 지도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작가는 지도를 사전에 그려놓고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짧은 문장으로 빠르게 전개하니 긴장감이 배가되고,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4. 작가에 대해서

 

책 뒤에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구제역으로 살처분되는 동물들을 본 후라고 한다.

"만약 소나 돼지가 아닌 반려동물, 이를테면 개와 인간 사이에 구제역보다 더 치명적인 인수공통전염병이 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인간은 반려동물에게도 가축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짓'을 할까. 내 대답은 '그렇다'였다. 육식하는 자로서, 생태계 최고 포식자로서, 저들의 삶을 지배하고 운명을 결정하는 변덕쟁이 폭군으로서 내린 결론이었다. 어떻든지 인간이 먼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저 반대편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인간을 넘어 '생명'을 지키고자 헌실하는 이들이 있으리라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희망을 놓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거기에서 출발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에 대한 희망'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의 이기심으로 참혹하게 죽어간 동물들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 이야기기도 하다.

결국 동물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요새 반려동물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고, 이에 따른 문제점들도 많아지고 있는 때에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 지도 근본적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직업을 가진 등장인물들의 디테일한 행동과 지식 등을 묘사하기 위해서 작가가 자료조사와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한 것 같다. 뒤에 도움을 준 사람들도 나오지만 그 사람들한테 도움을 받기 위해서 사전에 많이 자료들을 찾아보고 공부했을 것이다. 한 분야도 아니고, 여러 분야를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 정말 따분하고 힘들었을텐데,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총체적인 핍진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의 생각을 담는 작업을 하는 것을 생각하니 대단하다고 느꼈다.

 

5.  2020년 현재

 

2020년 코로나 19로 일상이 많이 바뀐 상태에서 실제로 코로나19로 사투를 벌이는 병원과 구급대의 모습이 7년 전에 소설 속에서 이미 구현되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는 당국의 방관과 무시로 혼란과 무질서가 있었지만 현재 우리는 그렇지 않다. 한편 소설처럼 봉쇄되었던 우한에서는 소설 속 상황과 비슷했을 것 같다. 그리고, 전염병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이 폭동으로 왜곡되어 고립되었던 80년 광주의 모습도 교차하는 듯하다. 봉쇄되고 고립된 도시에서 일상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에서 느끼는 공포감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장면 장면에서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소설만큼 긴박감 있게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고, 영화로 만들었으면 기준과 재형이 너무 영웅 서사로 가면서 상투적으로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 만드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은 수진의 쌍동이 남동생 현진은 왜 안 나올까하는 것이었다. 기준이 수진의 아버지를 찾은 것처럼 현진의 이야기도 잠깐이라도 나왔으면 어땠을까 싶다. 공수부대 장교로서의 갈등 같은 것들이 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스치듯 나왔는데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