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의 접속/문학
[책 3] 피프티 피플: 대하소설 아니라 소하소설
뚝샘
2019. 6. 27. 20:09
책이름: 피프티 피플
지은이: 정세랑
펴낸곳: 창비
펴낸때: 2016.11
작가가 이렇게 말했다. 퍼즐에서 맞추기 힘든 부분은 윤곽이 없고 같은 색깔이 계속되는 하늘과 같은 부분인데, 그런 조각들을 들고서 주인공이 없는 소설, 혹은 모두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색깔은 미미하지만 나란히 나란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퍼즐처럼....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딱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다. 평범한 사람들 50명의 이야기를 한 명당 5쪽 내외로 써내려간다. 그리고 앞에 나왔던 사람이 주변 인물로 지나가거나 그냥 스쳐지나가거나 한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5쪽 내외로 한 인물의 이야기를 완결시키지는 않지만 그 5쪽 안에서 삶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5쪽이 아쉽지만 다른 장면에서 그 사람이 다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단속적으로 삶은 이어진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평범한 이야기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살인사건도 있고, 화재사고도 있고, 교통사고도 있고, 가습제 살균제 피해자도 있고, 유가족도 있고, 자살도 있다. 평범과는 거리가 먼 특수한 사건 사고이지만 그들의 삶도 우리 사회 속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므로 이야기 속에 끼워져 있다. 그리고 인생 역전의 행운과 서로를 돌보는 따뜻함과 사랑을 예감하는 설렘도 함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등장인물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화재 사고로 대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떻게 그 모든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실현 가능성은 둘째로 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삶과 그들의 사연을 알고나니까 익명의 인물들이 아닌, 내가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인상적인 인물은 이호라는 감염내과 노교수이다. 욕심부리지 않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모습, 젊은이에게 충고하지 않는 모습, 그러나 온 몸으로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다. 존경받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을 잘 읽기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정리해가면서 읽었다. 예전에 조정래의 대하소설들을 읽을 때, 인물별로 정리해가면서 읽었듯이 이번에도 그렇게 읽었다. 이렇게 읽지 않으면 누가누군지 알 수가 없어서 이해가 힘들 것 같았다. 그렇게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 정도 인물들이 나오는 것은 거의 대하소설 급인데, 그만큼 길이가 되지는 않으니 소하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 읽고나서 나를 등장인물의 하나로 해서 써도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