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6] 미움받을 용기 2: 교육의 목표는 자립
책이름: 미움받을 용기 2
곁이름: 사랑과 진정한 자립에 대한 아들러의 가르침
지은이: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옮긴이: 전경아
펴낸곳: 이플루엔셜
펴낸때: 2016.05
『미움받을 용기』 1권이 아들러 심리학이 가르쳐준 지도로서 전체적인 지형을 알려주었다면, 2권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라고 한다. 그 인생의 방향은 행복이다. 어디로 어떻게 가면 행복해지는 말이다. 또한 1권에서 의문을 품었던 교육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교육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 먼저 아들러가 생각하는 교육의 목표를 언급한다. 아들러는 교육의 목표를 '자립'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교육은 자립을 위한 지원을 말한다. 이런 지원을 위해서는 아이들을 존경해야 한다고 하는데, 존경이란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사람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아는 능력이라는 에리히 프롬의 말을 인용한다. 문제아들조차도 존경하고 그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면 그들은 용기를 찾을 것이다. 찾지 않으면? 그건 그의 선택이고, 그들의 과제이다. 과제 분리.
아이들을 존경의 눈으로 본다고 해도 아이들이 모두 선하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존경의 눈이 아닌 강요로 대한다면 겉으로만 복종하고 마음으로는 반항하여 변화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변화의 가능성을 놓고 봤을 때 어떤 것이 더 가능성이 높을까? 존경의 눈으로 보는 것이 가능성은 높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고, 가시적이지 않을 뿐이다. 선택은 교사의 몫이다.
학생들이 싸움을 했을 때, 교사들은 원인을 묻는다. 그러면 둘 다 상대에게 원인이 있다면서 자신의 억울함, 어쩔 수 없었음을 주장한다. 그러면 교사는 둘 다 잘못했다고 하면서 둘 다 벌을 주지만 학생들은 둘 다 수긍하지 못한다. 이것은 원인론을 따라간 것이다. 반대로 학생들의 목적을 주목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방법도 있다. 폭력의 목적은 하나다.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 이는 학생 뿐만 아니라 교사나 부모도 수직적인 관계에서 갖게 되는 것인데, 이런 것에 의존해서는 의사소통이 합리적으로 될 리가 없다. 그래서 교사나 부모의 경우 재판관의 자리를 내려놓으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자립에 대한 칸트의 말을 인용한다.
인간이 미성년 상태에 있는 이유는 이성이 결여되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지시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결단도 용기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자기 책임하에 미성년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능력을 발휘할 용기가 부족한 것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용기. 과제분리를 하지 못하는 교사나 부모가 아이에게 지나치게 간섭함으로써 자립하지 못하고, 자립을 두려워 한다. 조금더 확대해서 학생이 선생님 덕분에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은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립이라는 교육의 목표를 놓고 봤을 때말이다.
그 다음으로 경쟁의 원리가 아닌 협력의 원리가 교육을 지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에 기초한 공동체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학생의 행동은 그 학생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의 원리가 만들어낸 증상이므로 학생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 원리가 지배하는 환경을 치료해야 하는 것이다. 협력의 원리로.... 어떻게? 아들러는 공동체 감각을 제시한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를 이루었고, 협력을 이루었다. 이것은 본능처럼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으므로 이를 발굴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럼 공동체 감각은 또 어떻게? 학생들과의 관계를 일의 관계로 보지 말고 교우의 관계로 보는 것. 결국 상대를 믿는 것. 먼저 주는 것.
마지막으로 사랑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사랑은 운명적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쌓아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에 대한 나의 사랑과 비슷하다. 노력하는 것이라고 보는데, 같은 맥락이다.
방향을 제시한다고 했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구체적인 듯 하면서도 다시 추상으로 가는 것 같기도 하고.... 교육은 자립이라는 말은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