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35] 여울물소리: 흐르고 흘러가는 삶
황석영이 쓴 전기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기수는 조선 후기 소설과 같은 이야기를 읽어주는 사람이다. 작가 후기에 보면 그 사람의 이야기만을 쓰려고 의도했지만 전기수가 나왔던 조선 후기를 살았던 사람을 쓰면서 시대를 제외하고 쓸 수 없어 필연적으로 동학과 연관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도 처음에는 전기수의 삶의 모습을 기대하고 읽었는데, 그의 삶에서 전기수 부분은 별로 없고, 대부분이 동학의 행수로서 교주를 모시며 그의 말을 기록하는 역할을 더 비중있게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조선 후기의 민중들의 모습을 함께 그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전기수를 겉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사실은 동학의 이야기이고, 더 크게 보아서는 조선 후기 민중들의 이야기이다.
1. 이야기 구조
주인공인 이신통의 아내(실제로 결혼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서로 사실상 마음으로 서로의 사람임을 인정하니까 그렇게 불러도 되고, 이를 아는 주변 사람들도 아내로 여기고 있다.)인 나, 옥연은 주막에서 태어나 몰락한 양반의 첩으로 들어갔다가 스스로 나왔고, 그 중간에 우연히 주막에 들른 이신통과 하룻밤을 통해 그를 마음에 품고 기다린다. 그리고, 다시 그가 찾아왔을 때 마음으로 서로를 확인하지만, 그는 다시 동학을 위해 떠난다. 이야기는 옥연이 그의 그 뒤 행적을 수소문하며 찾아가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그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 박희도, 백화, 그의 본가 등 그가 스친 곳을 찾아다니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면서 옥연은 그를 자신이 혼자서 품을 수는 없고, 세상을 위해 내놓아야 함을 깨닫고 그를 기다린다.
2. 화자
이 소설의 특징 중의 하나는 화자인데, 화자인 옥연이 자신의 심정을 거의 다 드러내어 독자에게 이야기를 하는 말투로 서술되어 친근감이 든다. 중간 중간에 욕도 하고, 신세 한탄도 하는 것이 그런 점을 드러낸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구성으로 가는 줄 알았더니 중반 이후부터는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이신통의 이야기를 전하다 보니 이런 특성은 좀 사그라든다. 그래도 소설에 몰입시키는 역할은 출분히 하고 있다.
3. 조선 후기의 삶
조선 후기의 삶의 모습을 잘 그려 놓은 곳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부정이 난무하는 과거 풍경이고, 또 하나는 출판하는 과정이다. 주인공은 한양에 올라와 서일수와 어울려 과거 시험을 대신 해주는 역할을 한다. 지전을 통해서 이런 거래가 이루어지는데, 지전에서는 응시자, 대신 써주는 사람, 자리 맡아주는 사람 등을 알선하면서, 기출문제나 족보 등을 구비하여 이런 부정을 주도한다. 그 준비 과정이 치밀하고 계획적이라서 현대의 시험 부정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출판하는 과정인데, 책을 갖고 가면 활자본으로 떠서 책을 만들어주는데, 조선 후기 지식이 유통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4. 은근히 다가오는 결말
마지막 결말은 죽은 이신통을 이장하고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있는데, 어렴풋이 들려오는 뗏목지기의 말이다. 뗏목지기는 여러 여울물을 지나면서 강을 흘러가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물이 흘러가는 모습이 결국 우리의 삶이고 역사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 개인의 특출한 삶이 어찌 보면 우리 모두의 삶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