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33, 34] 심청 상,하: 이타심, 삶의 이유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인당수에 심청을 바친 것과 같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고전 소설 심청전은 조선 후기에 나왔는데, 그 때에 정말로 여자를 사서 재물로 바쳤을 것 같지는 않다. 이 소설처럼 허수아비로 대신 쓰고 중국에 팔았을 것 같다.구체적인 시간 속에서 심청과 같은 삶을 살았던 이들이 존재했을 터, 그 이야기들이 변형되어 고전소설 심청이 되었을 것이므로 결국 황석영의 이 작품은 고전소설 심청전이 생략한 현실을 복원한 진짜 현실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중국으로 간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5세에 중국에 팔려가서 늙은 상인의 몸보신용 첩으로 살다가 그가 죽자 그의 막내 아들을 따라 그의 술집에서 일한다. 그 술집에서 만난 악공과 사랑에 빠져 아편전쟁의 혼란 중에 함께 탈출하여 도망치다가 납치되어 대만의 사창가로 팔려간다. 비참한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안고 살다가 영국 상인을 만나 그의 첩으로 싱가포르로 간다. 싱가포르에서는 대접을 받으면서 돈도 벌면서 자신의 뜻을 세워 이혼을 한 후에 다시 대만으로 돌아와 살다가 의붓딸의 유모와 함께 새로운 삶을 위해 일본 오키나와로 간다. 거기서도 술집을 하던 중에 오키나와의 제후를 만나 그의 첩이 되어 살다가 그가 죽자 조선의 인천으로 돌아와 고향을 방문한 후에 죽는다.
정말 파란만장이 이보다 더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가는 곳마다 고생이고, 가는 곳마다 비참함의 끝이 어디인지 한 번 보자는 투로 살아지는 인생을 어떻게 봐야 할까? 사실일까 아닐까를 떠나서 이런 얘기를 작가는 왜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비참함을 극복하는 데에는 희망이 필요하다고.... 뭐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그런 얘기를 하기에는 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
결론은 서구적인 근대성과 자본주의가 동아시아에 뻗친 잔혹함을 보여주려는 것, 그리고 그 잔혹함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자본주의가 이렇게 더럽고 비열하고 비인간적이라는 민낯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그 잔혹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처음에는 생존의본능이라고 생각했다. 죽는 것보다는 그래도 나을 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그 비참한 삶 속에서도 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이타심을 보면서 그게 어쩌면 삶의 이유일 수도 있고, 그게 결국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비참함을 겪어본 사람이 그런 일을 겪었던 자신을 돌아보며 그 상황에 있는 사람을 공감하는마음이 삶의 동력이 되고, 이것이 결국 주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은 외부적인 누구의 영향이 아닌 자신에서 나오는 것이고, 주인공인 심청은 주체적인 입장에서 운명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말에 심봉사를 만나 눈을 뜨게 하는 장면은 없지만 감동적인 마무리를 보여준다. 고향의 절에서 가져온 자신의 이름이 있는 위패를 만지작거리고 엷은 미소를 오물거리며 생을 마감하는 장면은 비참하고 고된 삶이었지만 의미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긍정하는 삶을 독자들이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