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31] 손님: 사람살이의 일
작가 후기에 보면 제목의 뜻을 설명하고 있다. 식민지와 분단을 거치면서 근대화되는 가운데에서 들어온 것이 기독교와 맑스주의인데, 천연두를 '손님'으로 여겼던 것을 생각했을 때, 이 둘도 같은 의미의 손님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문제는 이 둘이 충돌하면서 역사의 비극이 생겨난 것이고, 이 비극을 굿형식으로 풀어서 화해하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내용이다.
주인공 류요섭은 미국에 있는 목사이고, 이북 출신이다. 그 형 류요한은 장로이고. 이 형제의 집안은 증조 할아버지 때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생활한 집안으로 황해도 신천 쪽에서 살았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맑시즘이 들어오자 이들과 대립하였고, 전쟁 때에는 청년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그 과정에서 류요한은 양민들을 학살하는 데에 참여하게 된다. 그 후 형제는 월남하고, 다시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것이다. 그러다 고향 방문 기회가 주어져 류요섭은 고향을 방문하면서 친척들을 만나고, 죽은 사람들의 혼을 만나면서 그 옛날의 원한을 풀어나간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총체적이다. 누구 하나의 관점이 아니라 관련되는 사람들, 예를 들면 기독교 쪽의 류요한과 류요섭, 맑시즘 쪽의 순남이 아저씨와 일랑이 아저씨, 중립적인 관점의 소메 외삼촌(안상만)과 형수 등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죽은 사람들은 그 혼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양쪽 모두 역사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혹은 생존을 위해 저지른 모든 죄악들이 나오면서 사실성을 강화하고 있다.
죽은 혼은 내 편, 네 편이 없다. 어떤 장면에서는 순남이 아저씨의 혼과 류요한의 혼이 등장하여 류요섭에게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요섭이 두 분이 저승에서도 싸우지 않고 알고 지내느냐고 묻는데, 순남이 아저씨가 말한다. 거기에는 내 편, 네 편이 없다고 말한다. 죽으면 다 똑같은 것이다.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고 따지지 말고, 죽으면 다 똑같은데, 서로 아웅다웅할 필요가 무엇이 있느냐는 생각이 느껴진다.
그리고 모든 혼들이 등장해서 자신이 겪은 얘기들을 다 풀어놓는 장면이 있는데,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원망하는 마음, 탓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가기 위해 그야 말로 살풀이를 하는 심정으로 풀어놓는 장면에서는 민족의 화합을 위해서는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덮어놓고 화합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기억하기도 싫은 비극이라도 풀어야지 화해하고, 화합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 같다. 이 소설이 굿 형식을 차용한 것도 이러한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이승에서 풀어야 할 것은 풀어야지 저승에 잘 갈 수 있다는 생각. 과거를 풀어야지 미래로 갈 수 있다는 생각. 이것이 현재 우리가 해야 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은 중립적인 입장에 있는 소메 외삼촌의 말이었다. 그냥 이야기 보따리 풀 듯이 각자의 이야기를 풀면 그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나름의 평가가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을 소메 외삼촌이 한다.
그 때 우리는 양쪽이 모두 어렸다고 생각한다. 더 자라서 사람 사는 일은 좀더 복잡하고 서로 이해할 일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되어야만 했다. 지상의 일은 역시 물질에 근거하여 땀 흘려 근로하고 그것을 베풀고 남과 나누어 누리는 일이며, 그것이 정의로워야 하늘에 떳떳한 신앙을 돌릴 수 있는 버이다. 야소교나 사회주의를 신학문이라고 받아 배운 지 한 세대도 못 되어 서로가 열심당만 되어 있었지 예전부터 살아오던 사람살이의 일은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사람살이의 일',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인간을 생각하고 종교나 삶이념이 있을 수 있지, 인간을 생각하지 않는 종교나 이념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냐며 담담하게 우리에게 묻고 있다.
월남한 기독교의 보수성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그 필연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조금씩 읽어나갈수록 당시의 참상과 역사의 비극이 한꺼풀씩 풀려 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우면서도 안타까웠고, 이념과 종교의 대립이라는 추상적이라는 말이 아닌 생생하고, 구체적인 삶 속에서의 비극이 절절하게 느껴지면서 이런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