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78] 허수아비 춤: 다 아는 것을 고발하면 민망하지요.
1. 줄거리
일광그룹 남회장은 자기 아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할 특별조직으로 문화개척센터를 창설하고 총본부장에 윤성훈, 기획총장에 박재우, 실행총무에 강기준을 임명한다. 이들은 수사기관의 김동석, 행시 통과한 서기관 정민용, 검차 출신의 신태하를 영입하여 전방위 로비를 하면서 기반을 다진다. 한편 운동권 출신 검사 전인욱은 검사들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변호사 개업을 하고 진보진영의 사회단체 공동대표까지 맡는다. 재벌에 비판적인 기사를 써서 대학에게 밉보여 재임용에 탈락한 허민교수는 전인욱의 도움으로 시민단체 이사장이 되면서 임용 취소 소송에 참여한다. 일광그룹의 비자금과 로비, 경영권 승계 과정의 탈세 등이 발각되어 고발되지만 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하여 사실상의 면죄부를 준다. 자신의 처우에 불만을 가졌던 강기준은 모든 임무를 완수하고 거상그룹으로 옮긴다.
2. 현실성
현실성 있다. 재벌들의 부도덕하고, 짐승같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내가 직접 그들을 보지는 않았지만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면 알 수 있다. 돈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는 모습, 그 안에 털끝만큼의 인간적이고, 순수한 면모를 보이지 않는 기계적인 모습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부정적인 모습을 잘 고발하였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 내용을 소설로 옮긴 느낌이다. 사실을 고발하는 것이 전부다.
3. 문학성
그 안에 문학적인 형상화는 없다. 줄거리도 단편적이고, 재벌들은 이렇게 부도덕하게 산다는 말만 하고 끝이다. 그래서 그런지 울림이 없다. 재벌들의 삶에 대해서 우리가 추측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뭔가 모자라다. 그런 것들이 충격으로 다가오게 하든가, 교묘하게 보여주든가, 반전을 넣든가, 극단적으로 보여주든가, 뭔가 문학적인 장치가 들어가서 주제를 부각시켜야 하는데,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정말 부정을 저지르는 과정을 치밀하고, 기가 차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때로는 비열하게, 뒤통수를 치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바랐는데, 좀 실망이다. 윤성호의 웹툰 『내부자들』의 1부만 봤지만 정치, 경제, 언론, 조톡 등이 얽혀서 세상을 말아먹는 모습을 보고 정말 선이 굵고 힘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 힘을 이 소설에서 기대했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오히려 풍자적인 문체를 사용하여 인물을 희화화하였는데, 제대로 희화화되지 않았다. 작은 일에 화내거나 부하직원들을 갖고 장난치는 회장의 모습이 완전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지만 재벌총수로서 카리스마와 인간적으로 모자란 희화화가 어중간하게 겹쳐서 이도 저도 아닌 인물로 형성화되어 설득력이 없다. 채만식의 『태평천하』에 나오는 윤직원 영감 같은 효과를 내려고 했지만 인물 자체가 그런 인물이 아니니 풍자가 들어맞지 않는다. 차라리 짙은 무게감으로 어두운 분위기로 약간 신비롭게 그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작가가 인물의 대화를 통해서 너무 많은 말을 풀어 놓다 보니 계몽소설을 읽는 느낌도 들었다. 한국사회에 대한 분석이나 운동권 문화에 대한 것이나, 시민단체에 대한 것들 솔직히 지루했다.
4. 드는 생각들
한마디로 현실의 겉 모습만 보여주고 끝난 느낌이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새삼스럽게 고발하니 좀 민망하다. 주제 의식은 알겠는데 그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은 미흡한 점이 많다.